[딜사이트 권준상 기자] 커다란 돌담에 가려진 채 방치된 '금싸라기 땅'.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소유의 송현동 부지 얘기다. 이 땅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요지 중의 요지이지만, 금싸라기 땅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리만큼 제값에 팔지 못하는 처지다.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의 소위 '갑질'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이렇다. 국내 항공업계를 대표하는 대한항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영난에 직면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변수로 주 수익원인 국제노선 운항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실적은 자연스레 고꾸라졌다. 사업을 제대로 펼칠 수 없으니 현금흐름은 당연히 악화됐다. 

임직원의 순환휴직과 차등적 임금삭감 등 나름의 자구책을 펼치고 있지만, 막대한 고정비 지출과 차입금 상환 압박으로 유동성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미국법인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IC)의 차입금 만기(10월18일·한화 약 1조700억원) 부담도 떠안고 있다.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알짜 사업부'로 불리는 기내식사업부를 약 9910억원에 매각하며 약 2조원의 자금을 마련했지만 추가 자본확충이 절실하다.

송현동 부지 매각 역시 유동성 확보 차원이다. 유휴자산인 송현동 토지(3만6642㎡)와 건물(605㎡)을 매각해 수천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게 대한항공의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삼성생명으로 부터 약 2900억원에 매입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송현동 부지의 매각가를 약 5000억~6000억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번 딜에 찬물을 끼얹고 나섰다. 서울시민의 공익을 위해 수년간 방치돼 온 송현동 부지를 매입, 문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이 제3자에게 매각하더라도 이를 재매입해 공원조성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1년 넘게 시민의견 수렴을 거쳤고, 위반사항 없이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어 문제될 것도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강경한 입장은 매각자와 인수희망자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밀어붙일 경우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시의 갑질은 송현동 부지 매각 입찰때 현실화됐다. 금싸라기 땅을 매입하기 위해 대한항공을 끊임없이 노크(knock)했던 15개 기업들은 서울시의 엄포에 눌려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제시하고 있는 송현동 부지 매입 조건을 보면 더 가관이다. 서울시는 토지보상비를 약 4700억원으로 책정하고, 2022년까지 분할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원매자가 다수 있었던 상황이라 경쟁입찰이 진행된다면 5000억~6000억원, 아니 그 이상의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터무니 없는 가격도 모자라 현금이 부족해 자산을 팔아야 하는 회사에 2년간 토지보상비를 분할지급하겠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한항공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의 유동성 위기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국가 기간산업의 근간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특히 항공업은 국가신용도와도 연계되는 중요한 산업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추락하는 항공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 정책과 엇박자다. 서울시민의 공익도 중요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존폐도 그 무게가 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