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의 몸값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다. 생성형 AI 대표주자로 꼽히는 앤트로픽이 가파른 외형 성장에도 당초 기대했던 2조달러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 결과가 향후 AI 기업의 가치평가와 자금조달에 적용될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앤트로픽은 지난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를 위한 비공개 증권신고서(Form S-1) 초안을 제출했다. 지난 5월 투자 유치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9650억달러로 약 1293조원 규모다. IPO 과정에서는 2조달러를 웃도는 기업가치도 목표로 거론됐다. 이는 약 2682조원에 해당한다.
◆45% 성장에도 낮아진 IPO 눈높이
1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기존 주주와 IPO 투자를 검토하는 일부 투자자들은 최근 회사의 실적을 확인한 뒤 기업가치를 약 1조5000억달러(2012조원) 수준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5월 투자 유치 당시 기업가치 9650억달러보다는 약 55% 높다. 반면 당초 IPO 과정에서 기대됐던 2조달러와 비교하면 25% 낮다. 최근 실적 공개 이후 상장 몸값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한 단계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낮아진 배경에는 매출 성장률 둔화가 있다. 앤트로픽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열린 투자자 행사에서 올해 3분기 매출이 16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약 22조5000억원 규모다.
3분기 매출은 2분기 116억달러보다 45% 증가했다. 앤트로픽은 같은 기간 조정 기준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전 분기 대비 45%의 매출 증가는 여전히 압도적인 수치지만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속도가 크게 낮아졌다. 앤트로픽 매출은 올해 1분기 47억달러에서 2분기 116억달러로 약 147% 증가했다. 2분기 147%였던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3분기에는 45%로 떨어졌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 같은 성장률 둔화를 이유로 '2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해 목표 가치를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앤트로픽 가격표가 AI 몸값 기준으로
업계에서는 이 같은 눈높이 조정이 앤트로픽 한 곳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앤트로픽은 오픈AI(OpenAI)와 함께 생성형 AI 시장을 이끄는 대표 기업이다. 공개시장에서 본격적인 가치평가를 받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앤트로픽은 대규모 컴퓨팅 투자를 바탕으로 빠른 매출 성장을 이어왔다. 지난해 매출은 약 46억달러로 전년보다 12배 늘었다. 반면 영업손실은 80억달러를 넘어 약 10조7000억원에 달했다.
앞으로 10년간 클라우드와 컴퓨팅·인프라 등에 지출하기로 약정한 금액도 5180억달러에 달한다. 약 695조원 규모다.
그동안 AI 기업의 몸값에는 현재 이익보다 미래 성장 기대가 크게 반영돼 왔다. 앤트로픽 역시 향후 매출 확대를 전제로 높은 기업가치가 거론돼왔다.
앤트로픽이 예상보다 낮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경우 AI 기업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매출 성장률뿐 아니라 성장 지속성과 투자비 부담, 현금창출 능력이 기업가치 산정에서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AI 자금조달에도 커지는 경계감
이런 변화는 이미 AI 인프라 기업의 자금조달 과정에서 일부 나타나고 있다. AI 소프트웨어 및 모델 개발사들의 밸류에이션이 꺾이면, 이들에게 막대한 인프라를 대여하는 클라우드 기업의 미래 수익성에도 연쇄적으로 의문 부호가 붙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블랙스톤(Blackstone)의 투자를 받은 호주 네오클라우드 업체 퍼머스 테크놀로지스(Firmus Technologies)는 지난 9일(현지시간) IPO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목표 기업가치는 440억호주달러로 약 40조8000억원이었다. 불과 두 달 전 투자 유치 당시 평가액의 세 배 수준이었다.
네오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CoreWeave)도 대규모 차입을 통해 설비투자를 확대하면서 자금조달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어위브의 부채 규모는 약 500억달러로 약 67조원에 달한다.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최대 390억달러로 약 52조3000억원 규모다. 최근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가 시장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AI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면 후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증자와 IPO를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줄거나 자본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대규모 컴퓨팅 투자에도 부담이 커진다.
◆AI 투자 둔화 땐 국내 공급망도 영향
자금조달 여건 악화가 실제 설비투자 둔화로 이어질 경우 국내 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생성형 AI 기업과 클라우드 업체의 설비투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용 메모리 수요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다.
데이터센터 확대는 전력 인프라 투자도 동반한다. 서버와 AI 가속기 설치가 늘수록 변압기와 배전설비, 냉각장치 등의 수요도 증가한다.
글로벌 AI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세가 둔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서버용 메모리를 비롯해 전력기기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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