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캐롯손해보험·교보라이프플래닛에 이어 신한EZ손해보험까지 기존 보험사와의 통합 수순을 밟으면서 보험업권의 독립 디지털 보험사 육성 실험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보험시장의 경쟁을 촉진할 '메기'로 기대를 모았지만, 독자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지 못한 채 기존 보험사의 디지털 영업 역량을 키우는 '테스트베드'로 남게 됐다는 평가다. 디지털 보험은 살아남았지만 독립 디지털 보험사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개별 보험사의 경영 실패를 넘어 디지털 보험사 사업모델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소액·단기보험 중심의 비대면 판매로는 고정비를 감당할 수익을 내기 어려운 반면, 장기보험 시장에서는 대규모 설계사 조직과 보유계약을 확보한 기존 보험사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형사와 동일한 건전성 규제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독립법인 유지의 경제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는 롯데손해보험 지분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뒤 신한EZ손보와 합병해 통합법인을 출범시킬 방침이다. 양사의 통합이 완료되는 시점은 내년 하반기 중으로 예상된다. 앞서 신한금융지주는 JKL파트너스와 롯데손보 지분 77.04%를 6933억원에 사들이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금융당국 승인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잔여 지분을 확보하고 손보사 통합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신한EZ손보의 통합 추진으로 주요 금융그룹이 별도 법인을 통해 디지털 보험사를 육성하던 전략도 잇따라 막을 내리게 됐다. 올해 9월 디지털 생명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의 흡수합병이 결정됐고, 지난해에는 캐롯손보가 모회사 한화손해보험에 흡수돼 별도 법인 운영을 종료했다. 두 회사 모두 디지털 전업 보험사로 출범했지만 독립적인 사업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회사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세부적으로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사업과 인력은 교보생명 내 신설될 라이프플래닛사업부로 이관될 예정이다. 캐롯손보는 한화손보의 디지털 브랜드 '캐롯'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기존 CM(사이버마케팅) 채널 및 관련 기술·인력은 모회사 조직에 통합된 상태다. 독립 보험사로서의 지위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확보한 고객 접점과 비대면 영업 노하우는 기존 보험사의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되는 구조다.
신한EZ손보 역시 디지털 보험사 육성이라는 당초 전략에서 방향을 틀게 됐다. 신한금융지주는 2022년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인수하며 손해보험 포트폴리오를 추가했다. 이후 지금의 사명으로 이름을 바꾼 신한EZ손보는 디지털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신한EZ손보의 경우 디지털 전업 보험사는 아니지만 '디지털 보험사'를 표방하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전통 보험사들의 주력 사업군에서 벗어나 전기차(EV) 배터리 보험 신시장 선점에 나서고, 그룹 통합금융플랫폼과 연계한 금융안심보험 등 이색 상품 라인업을 선보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차별화된 상품과 비대면 영업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드러났고, 최근에는 적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장기보험 판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했다.
롯데손보와의 통합 이후에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롯데손보는 보험계약마진(CSM)이 2조원을 넘어서는 데다 장기보험 중심의 보유계약과 영업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통합법인의 수익구조 역시 롯데손보의 기존 보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신한EZ손보가 구축한 디지털 상품 개발과 비대면 영업 역량은 통합법인의 경쟁력을 보완하는 역할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통합 흐름이 디지털 보험사들의 취약한 수익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설계사의 개입 없이 보험을 판매하는 비대면 채널에서는 보장 구조가 복잡한 장기보험보다 가입 절차가 간편한 소액·단기보험을 취급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 상품은 계약당 보험료와 이익 규모가 작아 판매량을 늘리더라도 전산 시스템 유지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를 충당할 수익 기반을 형성하기 어렵다.
기존 대형 보험사와의 경쟁에서도 불리한 구조다. 대형사들은 설계사 조직과 장기간 축적한 보유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보험료 수입과 이익을 확보하면서 디지털 채널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디지털 보험사들은 자체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상품 개발과 고객 확보, IT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독자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사업 초기 적자가 누적될수록 모회사의 추가 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진입 규제 완화만으로 이러한 구조적 부담을 해소하기도 어렵다. 디지털 보험사는 크게 신한EZ손보처럼 디지털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는 유형과 법령상 통신판매전문보험회사로 운영되는 형태로 나뉜다. 통신판매전문보험회사는 총 보험계약건수와 수입보험료의 90% 이상을 전화·우편·컴퓨터통신 등으로 모집해야 한다. 그 대신 보험사 설립에 필요한 납입자본금 요건이 일반 보험사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완화돼 초기 시장 진입 부담을 덜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문제는 진입 문턱을 낮췄더라도 영업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규제 대응 비용과 자본 부담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디지털 보험사 역시 대형사와 마찬가지로 새 회계기준(IFRS17)에 대응할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갖춰야 하는 데다, 지급여력제도(K-ICS)에 따른 건전성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보험료 수입과 이익 규모에서는 대형사에 뒤처지지만 회계·계리·위험관리 등에 필요한 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적자가 누적되면 자본확충 필요성까지 커지면서 독립법인 유지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보험시장의 영업구조 자체가 디지털 보험사에 불리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의 주요 수익원인 장기 보장성 보험은 고객이 가입 필요성을 먼저 인식해 상품을 찾아보기보다 설계사의 설명과 권유를 거쳐 계약하는 아웃바운드 영업이 중심이다. 보험 가입 수요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시장에서 비대면 채널만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고마진 상품 판매까지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보험 가입 절차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기존 설계사 중심의 영업구조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독립 디지털 보험사가 살아남으려면 기존 보험사와 다른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객 접점을 넓힐 플랫폼을 구축하고 복잡한 보장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술적 해법을 마련하는 등 보험상품 판매에 앞서 고객의 일상적인 서비스 이용을 보험 가입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핀테크 기업이 세운 카카오페이손보가 여타 디지털 보험사들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대한 이용자 기반을 갖춘 카카오페이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험 상품을 노출하고 잠재 수요까지 발굴할 인바운드 환경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별도의 고객 모집에 투입하는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보험 가입으로 연결할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디지털 보험사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미래에는 고객들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대면 영업 의존도가 높고, 규제 부담도 커 디지털 보험사가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디지털 보험사를 한번 세운 뒤 다시 통합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 아무리 대형사라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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