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연 인턴기자]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 분)을 비롯한 염씨 삼남매는 매일 경기도의 가상도시 산포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한다.
거리는 이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퇴근 후 약속이 생겨도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루 서너 시간을 출퇴근에 쓰다 보니 퇴근 뒤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서울에 직장이 있지만 직장 가까이 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에서는 매매가격뿐 아니라 전세와 월세까지 함께 오르면서 이 선택의 무게도 커지고 있다.
서울에 살기 위해 돈을 더 낼 것인가. 서울 밖에 살면서 시간을 더 쓸 것인가.
◆ 매매도 전월세도 오른다…비싸지는 ‘서울살이’
지난 8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첫째 주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2% 올랐다. 상승세는 87주째 이어졌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8.31%다.
전셋값도 같은 기간 0.16% 상승했다. 올해 들어 누적 상승률은 8.35%로 매매가격 상승률을 처음 웃돌았다.
월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의 ‘2026년 8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 월세가격은 전월보다 0.82% 올랐다. 수도권 상승률은 0.59%, 전국은 0.35%로 서울의 상승폭이 더 컸다. 서울 아파트만 놓고 보면 월세 상승률은 0.91%에 달했다.
기간을 2년으로 넓히면 임차 부담 증가는 더 뚜렷하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64만1000원으로 2024년 8월 132만원보다 32만1000원 올랐다. 2년간 상승률은 24.3%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도 같은 기간 5억5394만6000원에서 6억3662만8000원으로 8268만2000원 상승했다. 상승률은 14.9%다.
◆ 주거지는 밖으로, 일자리는 서울에
주거비는 어디에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서울연구원이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4년 서울 외 지역으로 전출한 인구의 이동 사유는 가족 32.0%, 주택 26.9%, 직업 23.3% 순이었다. 주택을 이유로 서울을 떠난 인구는 약 12만7000명이었다. 통계청은 주택 사유를 소유·임대 조건 및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경기·인천으로 향했다. 서울연구원의 ‘서울 도시기본계획 모니터링 리포트 2025’에 따르면 2025년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인구는 46만5000명이었다. 이 가운데 32만3000명, 69.5%가 경기·인천으로 이동했다.
거주지는 서울 밖으로 옮겨가지만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들어오는 통근 수요는 여전히 많다. 서울연구원이 올해 공개한 수도권 생활이동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수도권 전체 통근 이동의 43.8%가 서울을 향했다. 경기·인천에서 발생한 통근 이동 가운데 서울행 비중은 17.6%였다.
평일 통근 목적으로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이동은 87만3000건이었다. 서울에서 경기·인천으로 나가는 통근 이동은 37만6000건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 서울 편도 70분…출근길에만 연 281시간
서울 밖에서 출퇴근할 때 감당해야 할 또 다른 비용은 시간이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시와 KT의 2024년 수도권 생활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오전 7~9시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통행에는 평균 70.3분이 걸렸다. 편도 출근에만 평균 1시간 이상을 쓰는 셈이다.
70.3분을 기준으로 한 달에 20일 출근한다고 단순 계산하면 출근길에만 약 23시간26분을 쓰게 된다. 연간 240일을 출근하면 약 281시간이다.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하면 11일이 넘는다.
여기에 퇴근시간까지 더하면 하루 통근에 사용하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 돈으로 잡히지 않는 비용 ‘퇴근 후 시간’
그렇다면 출퇴근길에서 사라지는 시간에는 가격이 없을까.
교통 분야에서는 통행시간을 줄였을 때 얻는 편익을 돈으로 환산하는 ‘통행시간가치’를 활용한다. 이동시간 감소를 경제적 편익으로 보고 교통시설 투자나 정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다만 출퇴근 1시간을 특정 금액으로 환산해 그대로 개인의 ‘손실액’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교통사업 평가를 위해 산출한 시간가치와 개인이 체감하는 출퇴근 비용은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장거리 통근의 비용은 퇴근 후 남는 시간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3년 12월 발간한 ‘통근시간의 변화와 노동시장 영향’은 통근시간을 근로자의 삶의 질과 노동생산성, 이직 의향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도시 성장과 주거가격 상승에 따른 교외 거주 증가로 근로자의 평균 통근시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의 실증분석에서는 통근시간이 증가할수록 여가시간과 수면시간이 감소했다. 여가 만족도와 삶의 만족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고 시간빈곤과 피로도는 높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소득과 시간을 함께 고려한 분석도 진행했다. 그 결과 통근시간이 길수록 ‘소득-시간 결합 빈곤’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더라도 일과 통근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시간이 부족하면 실제 생활의 여유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염씨 삼남매는 소득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빈곤에 놓여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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