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군대에서 병역을 이행한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 이런 상상을 한다. “아.. 누가 나 대신 새벽 보초 좀 대신 서 주면 안되나?”
아침 기상나팔보다 더 야속한 것은 한밤중 단잠을 깨우는 새벽 경계근무다. 총을 둘러메고 두어 시간씩 추위와 싸우던 한 청년은 지금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을 하는 기업의 핵심 엔지니어다. 사람 대신 험지를 누비고 위험한 현장을 지키는 네 발 달린 로봇 '라이보(RAIBO)'가 그 결과물이다.
최수영 라이온로보틱스 프로는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사람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로봇에 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고된 근무를 피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시간이 흘러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로봇을 개발하겠다는 기술자의 철학으로 발전했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카이스트(KAIST) 로보틱스·인공지능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해 2023년 설립된 로봇 스타트업이다. 주력 제품인 라이보는 계단과 울퉁불퉁한 지형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족보행 로봇이다. 최 프로는 카이스트 박사과정 중 황보제민 교수의 제안으로 창업 준비에 합류했고, 현재 기업부설연구소에서 라이보의 보행 제어를 담당하고 있다.
최수영 프로는 황보제민 교수가 10년 가까이 쌓아온 사족보행 로봇 연구 경험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그는 “황보 대표의 오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학계의 최신 기술을 빠르게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라이보의 차별점은 오래가는 체력과 날렵한 움직임이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8시간 작동하며 불규칙한 지형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한다. 라이보2는 계단은 물론 울퉁불퉁한 야외 지면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2024년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충전 없이 완주하기도 했다.
◆연구실 밖으로 나온 라이보
라이온로보틱스는 연구실에서 쌓은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옮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라이보는 방산 분야를 중심으로 납품이 이뤄지고 있으며 산업 현장에서도 기술검증(PoC)을 이어가고 있다. 보행 능력뿐 아니라 먼지와 비를 견디는 내구성과 통신 등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제품도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라이온로보틱스는 라이보2의 방수·방진 성능을 보완한 라이보2.5를 최근 선보였으며 차세대 라이보3도 개발 중이다. 최 프로는 “라이보3는 산업 현장이나 방산 등 극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모델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 과정에서 벤처캐피탈(VC)들의 투자도 이어졌다. 2024년 컴퍼니케이파트너스와 퓨처플레이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SBVA,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퓨처플레이, 산은캐피탈, IBK기업은행, IBK벤처투자 등이 참여한 23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는 최소 15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조직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현재 약 70명인 임직원을 연내 100명 안팎까지 늘릴 계획이다. 연구개발뿐 아니라 생산 등 전 분야에서 인력을 확충한다. 최 프로는 “시장 수요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개발 속도를 더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100명도 충분한 인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층 A에게 커피 갖다줘”…스스로 판단하는 로봇으로
최 프로가 향후 3~5년 로봇산업에서 주목하는 기술은 ‘VLA(Vision-Language-Action)’다. 로봇이 주변을 보고 사람의 말을 이해한 뒤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현재는 사람이 관제 화면에서 라이보의 이동 지점을 지정해야 한다. VLA가 고도화되면 “2층에 있는 A에게 커피를 갖다줘”라는 말만으로 로봇이 목적지와 행동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최 프로는 향후 5년 정도면 지금보다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수영 프로는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영역은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결국 실제로 기술을 적용했을 때 안전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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