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정부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상화에 투입하는 ‘실탄’을 내년 3조원으로 키운다. 2023년 조성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PF 정상화펀드의 약 2.7배다. 1차 펀드는 한때 발목을 잡았던 투자 집행 부진에서는 벗어났지만, 막상 사업장을 인수해 정상화하는 단계에서는 또 다른 숙제를 드러냈다. 사업장마다 부실 원인과 사업 단계가 달라 채권 인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고 사업권 이전과 사업계획 변경, 시공사 교체, 추가 자금 투입 등 다양한 재구조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년 3조원으로 몸집을 키우는 2차 펀드는 자금 규모 확대만큼이나 1차에서 드러난 운용상의 시행착오를 얼마나 보완하느냐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2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상반기 3조원 규모의 신규 캠코 PF 정상화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재정 1조5000억원과 민간자금 1조5000억원을 매칭하는 구조다. 다음달 운용사 모집을 시작해 오는 12월 선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특히 신규 펀드의 60%는 주거 사업장에 주목적 투자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약 1만8000호의 주택·준주택 공급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PF 사업장 정리를 넘어 주택공급 확대까지 정책 목적에 포함되면서 펀드가 맡아야 할 역할도 커진 셈이다.
2차 펀드의 출발점은 1차 펀드의 운용 경험이다. 앞서 1차 펀드는 캠코가 5000억원을 출자했고 민간 운용사들이 5953억원을 보태 총 1조953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현재까지 8193억원이 투자돼 전체 조성액의 약 75%가 집행됐다. 캠코에 따르면 투자 대상은 전국 16개 사업장이다. 이 가운데 주거 사업장에는 3730억원이 투입됐고 약 3881호의 주택·준주택 공급이 추진되고 있다.
출발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차 펀드의 첫 번째 문제는 ‘가격’이었다. 대주단과 운용사 간 PF채권 가격에 대한 눈높이 차이로 초기 자금 집행이 더뎠다. 대주단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부실 우려 채권을 감액해 매각하는 것을 꺼렸지만 운용사는 향후 사업 정상화 가능성과 추가 투입 비용, 최종 회수 가능성까지 고려해 매입 가격을 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9월 펀드 조성 이후 약 8개월이 지난 2024년 5월까지 투자 사례는 2건에 그쳤다. 특히 첫 투자처였던 서울 회현역 삼부빌딩은 펀드 조성 이전부터 신한자산운용이 검토하던 거래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기존 채권단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캠코펀드의 경·공매 자산 취득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손질했다. 이후 투자에 속도가 붙으면서 PF채권 매입가격 등을 둘러싼 초기 투자 집행의 병목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주목할 점은 투자 집행의 물꼬가 트이자 이번에는 ‘어떻게 사업장을 정상화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부실 PF 사업장을 정상화하려면 단순히 기존 PF채권을 인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업권과 토지를 넘겨받거나 사업계획을 바꾸고 시공사를 교체하는 것은 물론, 추가 자금을 투입해 본PF까지 연결해야 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았다. 사업장별 여건에 따라 필요한 자금과 투자 구조도 달라졌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사업장은 이 같은 재구조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캠코펀드는 605억원을 투입해 기존 채권을 인수하고 기존 시행사로부터 토지와 사업권을 확보했다. 이후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예정됐던 사업을 아파트로 변경하고 신규 시공사를 선정했다. 본PF 조달까지 마친 뒤 올해 2월 착공에 들어갔고 4월에는 178가구 분양을 완료했다. 600억원대 펀드 자금을 마중물로 약 3000억원 규모 사업장을 다시 움직이게 한 셈이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데이터센터는 정상화 방식이 또 달랐다. 캠코펀드의 브릿지론 채권 인수에 더해 별도 PFV 설립과 추가 자금 투입, 시공사 교체 등을 거쳐 본PF로 전환됐다. 채권 매입만으로 정상화를 끝내기보다 사업 구조 자체를 다시 짜야 했던 사례다.
성수동 오피스 사업장 역시 캠코펀드 투자 이후 본PF 전환을 추진하는 등 사업장마다 정상화 경로와 필요한 수단이 달랐다. 같은 ‘부실 PF’로 묶여 있어도 사업 단계와 부실 원인, 이해관계자 구성에 따라 필요한 재구조화 방식과 소요 기간은 제각각이었다.
1차 펀드의 정상화 작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캠코에 따르면 투자 사업장 16곳 가운데 8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 8곳은 인허가 변경과 시공사 선정, 본PF 모집 등 착공 전 절차를 밟고 있다. 자금 집행률은 약 75%까지 올라왔지만 투자 사업장의 절반은 아직 착공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셈이다.
현장에서 2차 펀드의 운용 방식을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차 펀드 운용사들은 지난 17일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서울 마포구 도화동 PF 사업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1차 펀드 운용 과정에서 확인한 제약을 토대로 투자 구조를 보다 유연하게 설계해달라고 잇달아 건의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사업장별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투자 대상과 조건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코람코자산운용은 기존 펀드가 일부 구조와 투자 유형에 제약이 있었다며 지분투자와 대출 등 자금 집행 방식을 다양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캡스톤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도 정책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여러 정상화 수단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3조원 규모의 2차 펀드는 1차에서 드러난 ‘사업장 정상화’라는 두 번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1차 펀드가 초기에는 투자처를 확보하고 자금을 집행하기 위해 제도를 손봤다면, 이제는 사업장별 상황에 맞춰 채권 인수와 지분투자, 추가 자금 공급, 사업구조 변경 등을 얼마나 유연하게 조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2차 펀드는 1차보다 몸집이 약 2.7배 커지는 데다 주거 사업장 정상화를 통한 1만8000호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까지 짊어진다. 투입할 돈이 많아진 만큼 부실 사업장을 실제 착공과 분양, 투자금 회수까지 끌고 갈 운용 능력도 함께 요구된다. 1차에서 자금 집행의 물꼬를 텄다면 2차에서는 그 자금을 실제 사업 정상화로 연결하는 것이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캠코 관계자는 “2차 펀드에서는 1차 때 한계로 지적됐던 부분들을 감안하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아직 세부적인 조건들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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