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관훈 기자] 법적으로는 없어도 된다. 한싹이 선택한 것도 '사외이사 0명'이었다. 유일한 사외이사(독립이사)가 물러난 뒤 후임 외부 인사를 선임하는 대신 20년 넘게 회사에서 근무한 내부 임원을 사내이사로 채우면서다. 이에 따라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33%에서 0%로 떨어졌다. 실적 부진과 차입 부담으로 자본배분의 중요성이 커진 시점에 비용과 효율성을 이유로 기존 외부 견제장치를 없앴다는 점에서 이사회 독립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싹의 유일한 사외이사였던 이상길 이사는 올해 3월31일 일신상의 사유로 자진 사임했다.
한싹은 후임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한싹은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 1000억원 미만인 벤처기업으로 상법상 사외이사 의무선임 예외 대상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가 없는 현재 이사회 구성 자체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사외이사 부재는 후임자를 찾지 못해 발생한 일시적인 공석이 아니다. 회사가 비용과 운영 효율성을 이유로 사외이사를 두지 않기로 결정한 결과다. 법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되는 지위를 활용해 기존에 유지하던 외부 견제장치를 없애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사외이사가 빠져나간 자리는 내부 인사가 채웠다. 한싹은 2002년 입사해 20년 넘게 회사에 재직한 문호원 사업지원본부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기존 이사회 3명 가운데 1명이었던 외부 인사가 빠지고 그 자리를 장기근속 내부 인사가 채우면서 이사회는 이주도 대표를 비롯한 사내이사 3명으로만 구성됐다. 사외이사 비율은 33.3%에서 0%가 됐다.
문 본부장의 오랜 근속 경험이 사업 이해도 측면에서는 장점일 수 있지만 이사회 독립성 측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경영진이 제출한 주요 안건을 이사회 내부에서 독립적인 위치에서 들여다볼 외부 인사가 한 명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싹이 이 같은 이사회 체제를 선택한 시점은 회사의 재무적 의사결정이 한층 중요해진 때와 맞물린다. 한싹은 지난해 신사옥 건립 과정에서 연결 기준 단기차입금이 2024년 말 34억원에서 95억20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6월 말에도 단기차입금은 89억7000만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현금흐름도 -21억4800만원으로 현금 유출이 이어졌다.
한싹은 지난해 12월 자회사 에이치에스시큐리티의 리셀러 계약에 따른 물품대금 지급채무에도 50억원 한도의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2024년 말 연결 자기자본의 14.03%에 해당하는 규모다. 실제 채무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자회사 사업 확대 과정에서 모회사가 일정 부분 재무 부담을 함께 지는 구조다.
신사옥 투자와 자회사 지급보증 자체는 사외이사가 재임하던 시기에 이뤄진 의사결정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굵직한 자본배분 판단이 앞으로는 외부 이사가 한 명도 없는 이사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당장 한싹은 지난해 95억원까지 불어난 단기차입금을 줄이는 동시에 본업의 현금창출력을 회복해야 한다. 신규 성장투자와 자회사 지원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 회사가 주가 약세에 대응해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재개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차입금 상환과 투자, 주주환원 사이의 자본배분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각각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을 논의하고 의결할 이사회가 내부 인사 3명으로만 구성된 셈이다. 법적으로 사외이사를 둘 의무가 없다는 사실과 별개로 이사회 내부에서 경영진의 판단을 독립적으로 검토할 외부 시각이 사라졌다는 점은 한싹 지배구조의 약점으로 꼽힌다.
회사는 사외이사의 빈자리를 감사제도와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외부에서 영입한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싹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없다고 해서 견제 기능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외부에서 영입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중심으로 감사제도,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를 통해 주요 경영 의사결정의 적정성과 투명성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가 제시한 장치들이 이사회 내부의 독립적인 견제 기능을 그대로 대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부회계관리제도와 외부감사는 재무보고의 신뢰성과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기능이 중심이다. 외부 출신 CFO 역시 회사의 임직원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원인 사외이사와 지위와 역할이 다르다.
한싹에는 별도의 감사제도도 존재하는 만큼 사외이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의 감시 기능 자체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사회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 안에서 경영진과 독립된 외부 인사가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특히 회사가 사외이사 부재를 일시적인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구조의 방향성을 둘러싼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한싹 측은 현재 이사회 구성이 법령과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운영 효율성과 전문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싹 관계자는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이 1000억원 미만인 벤처기업으로서 사외이사 의무 선임 대상이 아니다”며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관련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외이사를 두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정관 변경 및 이사 선임을 주주들의 승인하에 적법하게 마쳤다”고 말했다.
내부 임원을 이사로 선임한 배경에 대해서는 “문호원 본부장은 단순히 이사 수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20년 넘는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의 사업 경쟁력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싹의 '사외이사 0명' 체제를 둘러싼 논점은 적법성보다 상장사가 스스로 선택한 지배구조의 수준에 있다. 한싹은 비용과 운영 효율성을 이유로 기존 사외이사 자리를 내부 인사로 채웠다. 재무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성장투자와 주주환원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부 인사만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시장이 요구하는 견제와 균형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가 향후 지배구조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싹 관계자는 “향후 회사의 자산 및 사업 규모가 확대되거나 법적 요건이 변경될 경우에는 사외이사 선임을 포함해 회사 규모에 적합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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