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송한석 기자] “고객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조차 줄여주는 게 진짜 편리함입니다.”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IFA 2026 밀레 부스에서 만난 현장 관계자는 올해 전시의 핵심을 이같이 설명했다. 가전에 인공지능(AI) 기능을 추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능을 사용할지 소비자가 직접 판단해야 하는 과정 자체를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밀레가 올해 IFA에서 내건 슬로건도 ‘집안일의 끝이 보인다(The End of Housework is in sight)’다. 식기세척기부터 오븐, 세탁기·건조기까지 가전이 사용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자동화 범위를 넓혔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차세대 ‘G8 다이아몬드’ 식기세척기다. 밀레 식기세척기 가운데 처음으로 AI 기반 카메라를 적용한 ‘오토비전’을 탑재했다. 카메라가 식기세척기 내부에 어떤 식기가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인식하고 세척 프로그램과 옵션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현장 관계자는 “유리를 감지하면 너무 높은 온도를 사용하지 않도록 유리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며 “플라스틱은 건조가 잘 안되기 때문에 열풍을 더 돌려주는 식으로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냄비나 팬이 들어오면 보다 강한 세척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기존 자동 세제 투입 기능인 ‘오토도스’와 결합하면 식기의 종류와 양을 확인하고 세척 방식부터 세제 투입, 건조까지 상당 부분을 기기가 결정하는 구조다.
밀레가 강조하는 지점은 단순한 에너지 절감보다 사용 편의성이다. 현장에서 에너지 절감을 위한 기능이냐는 질문에 밀레 관계자는 “에너지보다는 고객 편의성이 메인”이라며 “플라스틱이 감지되면 열풍을 조금 더 돌려 건조가 잘되도록 하는 등 고객 편의에 초점을 맞춘 기능”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는 AI의 역할을 조리 과정까지 넓혔다. 밀레 앱 기반 AI 쿠킹 어시스턴트 ‘컬리너리코치’가 대표적이다. 사용자가 텍스트나 음성으로 원하는 요리를 말하거나 사진을 올리면 AI가 조리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한다. 필요한 프로그램과 온도 등 설정값은 연결된 밀레 오븐으로 전달된다.
밀레는 “챗GPT를 사용하는 것처럼 이미지나 음성, 텍스트로 무슨 요리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거나 레시피를 복사해 붙여 넣을 수 있다”며 “오븐과 연결해 단계별로 조작 방법을 알려주고 오븐 설정도 자동으로 조정해 준다”고 강조했다.
밀레가 이 같은 기능을 넣은 배경에는 가전의 기능이 다양해질수록 소비자가 오히려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실제 밀레가 확보한 사용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조리 과정의 약 75%에서 소비자들은 상·하단 가열과 열풍 등 두 가지 작동 모드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사용 경험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세탁에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했다. 차세대 W2 세탁기와 T2 건조기는 세탁량과 생활 패턴에 따라 물과 에너지, 세제 사용 등을 조절한다. 밀레는 여기에 AI와 지능형 센서를 결합한 미래 세탁가전 콘셉트 ‘캐리’도 공개했다.
현재 세탁기는 프로그램과 온도, 탈수 속도, 세제 투입량 등을 조합하면 100만개가 넘는 설정이 가능하다. 캐리는 향후 세탁물의 소재와 색상, 양을 제품이 직접 인식해 프로그램과 세탁 과정, 세제 투입량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용자가 세탁기를 이해하는 대신 세탁기가 세탁물을 이해하게 한다’는 게 밀레가 제시한 방향이다.
밀레가 IFA 2026에서 제시한 AI 가전의 방향은 결국 ‘기능의 추가’보다 ‘선택의 삭제’에 가깝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프로그램과 옵션을 제시하는 대신 AI와 센서가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적합한 기능을 골라주는 방식이다. AI 가전 경쟁이 기능을 얼마나 많이 탑재했는지를 넘어 소비자가 직접 해야 했던 판단을 어디까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느냐의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IFA 개막에 앞서 열린 글로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공동 회장 역시 “고객이 제품의 프로그램이나 기능에 대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며 “사용자를 대신해 기술이 판단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밀레가 생각하는 진정한 편리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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