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기자] 투명교정장치(SMA) 기업 ‘그래피’가 604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마치면서 치과용 디지털 장비기업 ‘레이’의 경영권 인수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500억원이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배정된 만큼 시장에서는 레이 인수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피가 레이를 품을 경우 교정과 디지털 진단·치료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거래의 핵심 관전 요소다.
여기에 레이에 대한 경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해온 메가젠임플란트가 최근 그래피와 기술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임플란트·교정·디지털 진단을 연결하는 사업 연합 가능성도 거론된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래피는 최근 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을 통해 “레이의 경영권 취득을 목적으로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그래피는 5월 8일 레이 지분 인수 검토 사실을 처음 밝힌 데 이어 6월 4일과 7월 3일에도 “사업 경쟁력 강화와 중장기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레이 인수를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조건과 인수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공시했다.
레이 인수 검토가 아직 미확정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피가 최근 대규모 자금 조달까지 마치면서 거래의 실행 가능성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의 관심도 인수 검토 여부 자체보다 최대주주 지분 매입 규모와 가격, 추가 지분 확보 방식 등 구체적인 거래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피는 지난달 13일 이사회를 열고 제6회차 사모 전환사채(CB) 483억원과 전환우선주(CPS) 제3자배정 유상증자 121억원 등 총 604억원의 자금 조달을 결의했다. 해당 자금은 지난달 21일 납입이 완료됐다.
전체 조달금액 가운데 50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배정됐다. CB 조달액 중 402억원, CPS 조달액 중 98억원이 각각 타법인 증권 취득에 사용될 예정이다. 그래피가 별도의 인수 대상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레이 경영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반복해 공시한 만큼, 시장에서는 해당 자금이 레이 지분 취득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604억원 전액이 레이 인수대금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증권 취득자금으로 분류된 금액은 500억원이며, 레이 최대주주 측 지분율과 경영권 프리미엄, 추가 지분 취득 필요성에 따라 별도의 자금 조달이나 공개매수 등이 필요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거래의 또 다른 관전 요소는 메가젠임플란트와 그래피 사이의 연결고리다. 메가젠임플란트 측이 레이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해온 가운데 그래피와 디지털 덴티스트리 분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메가젠임플란트는 지난 1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레이 주식을 사들였다. 지분 취득에는 메가젠임플란트와 특수관계법인 엠지뉴턴, 박광범 대표를 포함한 임원 4명 등 총 6개 주체가 참여했다.
메가젠임플란트는 4월 8일 특별관계자 합산 기준 레이 지분 5.13%, 80만36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명시했다.
이어 메가젠임플란트는 레이에 이사·감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5월 28일 예정된 레이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는 주총 소집과 의결권 행사, 개표 절차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검사인 선임을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메가젠임플란트의 행보는 레이 경영권 자체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단순 재무적 투자를 넘어 이사회 구성과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후 메가젠임플란트는 그래피와 디지털 덴티스트리 분야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심운섭 그래피 대표와 박광범 메가젠 대표가 서명한 협약에는 디지털 덴티스트리 관련 기술과 사업 협력 방안이 담겼다.
업계에서는 메가젠임플란의 레이 지분 취득과 주주행동, 그래피와의 MOU, 그래피의 레이 인수 검토가 잇따라 진행됐다는 점에서 향후 3사 간 사업 협력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MOU 체결 이후 그래피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어지면서 두 회사의 협력이 레이 인수 이후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간적 선후관계만으로 메가젠임플란트와 그래피가 공동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시상 메가젠임플란트가 그래피의 자금 조달에 참여했거나 레이 인수를 위한 공동보유·의결권 공동행사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3사 연합은 확정된 거래구조라기보다 향후 협력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에 가깝다.
그래피가 레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우선 그래피와 레이 사이에서는 비교적 명확한 사업적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래피는 자체 개발한 형상기억소재 기반 투명교정장치를 보유하고 있고, 레이는 디지털 엑스레이와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 구강스캐너, 진단·치료계획 소프트웨어 등을 공급하고 있다.
두 회사의 기술과 제품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면 환자의 구강을 촬영·스캔하는 진단 단계부터 교정 치료계획 수립, 교정장치 제작과 적용까지 연결하는 디지털 덴티스트리 밸류체인을 구축할 수 있다. 그래피가 교정장치라는 단일 제품 영역에서 벗어나 진단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사업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셈이다.
메가젠임플란트와의 MOU가 공동제품 개발이나 판매 협력으로 구체화될 경우 사업 영역은 임플란트까지 확장될 수 있다. 레이의 디지털 진단장비와 그래피의 교정 솔루션, 메가젠임플란트의 임플란트 제품을 연결하면 진단·교정·임플란트에 이르는 치과 치료 전 주기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구축이 가능해진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업 조합이 오스템임플란트가 구축한 디지털 덴티스트리 원스톱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 구도로 발전할 가능성도 거론한다. 오스템은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영상진단 장비와 디지털 장비, 소프트웨어를 자체 사업 영역에 통합해왔다.
메가젠임플란트·그래피·레이가 각각 보유한 제품과 기술을 결합하면 오스템과 유사하게 임플란트와 교정, 디지털 진단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다. 단일 지배구조 아래 제품 개발과 영업망을 운영하는 오스템과 달리 3사의 협력은 인수와 MOU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실제 사업 통합 속도와 실행력이 경쟁력 확보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임플란트를 축으로 디지털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통합해온 업계 1위 기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메가젠임플란트·그래피·레이의 협력이 실제 사업 제휴로 구체화될 경우 오스템의 원스톱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 조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딜사이트는 그래피 측에 레이 인수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와 메가젠임플란트와의 협력 여부를, 메가젠임플란트 측에는 레이 지분 보유 목적과 그래피의 인수 검토에 대한 입장을 질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