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난 현대로템의 지위가 격상되고 있다. 유례없는 실적 고공행진을 기록하면서 13년 만에 부사장 승진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 호실적이 방산 부문의 수출 확대에서 기인한 만큼 방산사업부장을 맡던 이정엽 전무가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방산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세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이 부사장이 이사회에 합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작년 매출 4.2조·영업익 4500억 전망…K2 전차 수출 본격화 덕
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4조2400억원과 영업이익 448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8.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13.6% 급증한 숫자다. 이 기간 순이익은 136.8% 불어난 3713억원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로템이 외형과 내실의 동반 성장을 일궈낸 주된 배경에는 방산(디펜스솔루션) 부문의 선전이 주효했다. 앞서 현대로템은 2022년 폴란드와 K2 전차 1000대를 납품하는 기본 계약을 체결했는데, 지난해 2분기부터 K2 전차 수출에 따른 매출 인식이 본격화됐다.
특히 지난 4분기에는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으로 파악된다. 폴란드로 K2 전차 28대를 인도한 데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환차익에 따른 이익 규모가 늘었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증권가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를 살펴보면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각각 1조2000억원, 1600억원, 1300억원 안팎이다.
유독 두드러지는 성과는 수익성 잣대인 영업이익률이다. 현대로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무려 4.7%포인트(p) 상승한 10.6%로 예상된다. 이 회사가 1999년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이익률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지표다.
◆ '성과보상' 13년 만에 부사장 승진자 배출…현대차그룹 내 위상 변화 감지
대규모 해외 수주를 인정받은 이 부사장은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사업본부 내 사업부장에서 본부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직책이 상향됐다. 단순 영업 뿐 아니라 지상무기체계 연구개발(R&D)과 생산 등을 이끌게 됐다.
1968년생의 이 부사장은 한양대에서 기계공학 학사와 기계설계 석사, 메카트로닉스 박사를 취득했다. 현대로템에서는 방산연구실장과 방산기술연구소장, 방산영업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대로템에서 이례적인 고속 승진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부사장은 2017년 2월 이사대우로 처음 '별'을 달았고, 2년 뒤인 2019년 4월 상무로 승진했다. 이어 2022년 12월 전무에 올랐으며, 또 다시 2년 만에 부사장까지 꿰찼다.
현대로템에서 내부 부사장 승진자가 나온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 주요 생산기지인 창원공장장의 김정수 전무의 부사장 승진을 마지막으로 이 회사 주요 경영진에 대한 성과 보상을 소홀히 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장기 부진에 시달린 현대로템이 골칫덩이로 전락하면서 그룹사 내 중요도가 하락했던 탓이다.
예컨대 김 전 부사장은 '정통 로템맨'이 아니다. 그는 현대모비스에서 오랜 기간 동유럽 국가의 법인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현대로템 마지막 부사장은 2019년부터 약 1년 간 대표이사를 지낸 이건용 부사장으로, 그 역시 기아와 현대글로비스 등에서 경력을 쌓은 비(非) 현대로템 출신이다.
이 부사장 승진은 현대차그룹 내 현대로템의 존재감이 한층 강화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나아가 5년 만에 부사장 직급이 재등장하면서 이전보다 한층 촘촘한 임원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 기존 현대로템 임원 구성을 살펴보면 대표이사인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을 중심으로 총 5명(이 부사장 포함)의 전무가 포진해 있었다.
◆ 철도 매출 넘어선 방산, 이 부사장 사내이사 선임 가능성↑
주목할 대목은 이 부사장의 현대로템 이사회 합류 여부다. 디펜스솔루션 부문의 매출 비중이 과반을 넘겼고, 추가 해외 수주 기대감이 높아 당분간 실적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로템 사내이사는 이 대표와 재경본부장인 김두홍 전무,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인 김정훈 전무 총 3인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로템은 현대모비스와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이 철도차량 부문을 각각 떼 내 통합한 회사다. 태생적 이유로 저마진 사업인 철도(레일솔루션) 부문 매출 비중이 높았지만, 지난해부터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실제로 현대로템은 2001년 말 기준 매출 5997억원을 기록했으며, 방산이 포함된 기타 부문 매출은 252억원(4.2%)에 불과했다. 이 같은 흐름은 2023년까지 계속됐는데, 이 기간 총 매출(3조1633억원)에서 레일솔루션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6.2%(1조7788억원)에 달했다. 디펜스솔루션 부문과 에코플랜트 부문은 각각 33.5%(1조592억원), 10.3%(3253억원)였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디펜스솔루션 부문의 비중은 50%를 기록했으며 레일솔루션 부문 36.7%, 에코플랜트 부문 13.4%로 나타났다. 증권가 전망에 따르면 디펜스솔루션 부문의 매출 비중은 연간 52%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산된다.
디펜스솔루션이 현대로템의 주력 사업 부문으로 떠오른 만큼 이 부문 출신의 사내이사가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영 활동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방산업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현대로템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정해진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사 선임의 경우 의무 공시 사항으로 미리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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