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이달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기업들이 '깜짝'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채권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웅크리자,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인 매수세로 돌아선 것이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대부분 4%를 밑도는 등 금리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날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LG유플러스(AA0)는 1000억원 모집 대비 6800억원에 달하는 투자수요를 모았다. 2년물(200억원), 3년물(500억원), 5년물(300억원) 등으로 트랜치를 구성한 LG유플러스는 3년물·5년물에서 개별민평금리보다 낮은 금리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다만 2년물은 개별민평 대비 6bp(1bp=0.01%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완판됐다.

앞서 이달 초 수요예측을 진행한 대한항공(A-)은 1500억원 모집에 나서 475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았다. 2년물(800억원)과 3년물(700억원)로 만기를 나눈 대한항공은 각각 개별민평금리 대비 -65bp, -45bp 수준에서 모집액을 채우면서 발행금리를 큰 폭 낮출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은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회사채 발행액을 2500억원으로 증액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는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상당수 우량 기업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SK텔레콤은 지난달 3년·5년·7년·10년 등으로 만기를 나눠 총 2000억원을 모집했지만, 3년물과 5년물은 개별민평금리 대비 높은 수준에서 모집액을 채웠다. 한국투자증권(AA0)은 2년물과 3년물로 나눠 1500억원을 모집했지만 각각 개별민평금리 대비 26~29bp 수준에서 간신히 완판시킨 바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LG유플러스가 특이 사례로 보기보다는 시장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며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크게 줄어들면서 회사채 공급은 적어진 반면, 시장의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금리가 고점은 찍었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금리는 10년물(4.055%)을 제외하고 ▲2년물(3.885%) ▲3년물(3.887%) ▲5년물(3.961%) ▲20년물(3.933%) ▲30년물(3.876%) ▲50년물(3.833%) 등 대부분의 만기에서 4%를 밑돌았다. 이달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제롬 파월 의장이 "최근 몇 달 동안 장기채권 수익률 상승으로 금융 여건이 긴축됐다"고 언급, 국내외 금융시장은 사실상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영향이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회사채 발행을 선제적으로 집행한 데 이어, 기관투자가들의 연말 '북 클로징'(회계장부 마감)도 앞두고 있어 연내 추가적인 회사채 발행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올해 막바지 공모 조달을 앞둔 곳은 이달 중순 이후 수요예측을 준비 중인 삼양홀딩스(AA-), CJ CGV(A-) 정도가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미국 국채 금리 상승 여파로 혼란스러웠던 채권시장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기업들은 막바지 자금조달에 나서기보다는 내년 초 조달을 바라보면서 은행 대출이나 기업어음(CP) 등으로 버티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로 발행 의사를 내비치는 곳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