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웅 기자] 현재 KT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배구조를 손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4월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로 이뤄진 '뉴 거버넌스 구축 TF'를 꾸리고 대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매번 반복되는 권력 외풍의 악순환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마저 엿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의지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에 보수정권 인사를 발탁하고, 정관상 대표이사 자격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전문성과 관련한 규정을 삭제하는 등 외풍 빌미를 제공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외풍을 끊겠다는 KT의 원대한 목표가 말 성찬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KT는 지난 9일 총 7인의 사외이사 후보자 명단과 정관 개정안을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오는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 선임안과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면 멈춰 섰던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7인은 ▲곽우영 전 현대자동차 차량IT개발센터장▲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 ▲이승훈 KCGI 글로벌부문 대표 파트너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양희 한림대 총장이다. 이중 곽우영·이승훈·조승아 후보는 주주 추천을 받은 인사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자들은 전반적으로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김성철·윤종수·최양희 등 과거와 현재 보수정권에서 활약한 인사들이 다수 포진됨에 따라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성철 후보는 현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종수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환경부 차관을 지냈고, 최양희 후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했다. 7명 중 3명이 현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로 채워지면서 이사회 독립성 확보에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이사회가 또다시 정권 입장을 대변하는 선택으로 외풍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CEO 자격 요건' 등 정관 개정안도 이 같은 우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T는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기업경영 전문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산업 전문성 등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기존 요건이었던 'ICT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 등'을 빼고 '산업 전문성'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KT 측은 "CEO 자격 요건에서 ICT를 뺐다기보다는 산업 전문성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체 사업이 ICT에 한정되지 않은 만큼 금융, 미디어 등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유관 경험을 갖춘 CEO 등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정치권 낙하산 인사 추천을 위한 물밑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대표이사 후보 심사기준에서 'ICT 분야 전문성'이 빠지면서 통신 비전문가도 KT 대표이사로 내정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는다면 대표이사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KT새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정관 상 대표이사 후보자의 자격 요건에서 정보통신 전문성을 산업 전문성 등으로 변경하는 등 낙하산 CEO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민영화 21년째를 맞은 KT는 지난 세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왔다"며 "이 같은 외풍 악순환을 척결하기 위한 구조적인 체질 정비가 시급하지만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해 제대로 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