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낸드플래시 시장이 4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2위인 키옥시아와 4위인 웨스턴디지털(WDC)이 이르면 다음 달 합병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술력으로는 국내 낸드플래시 제조사를 따라갈 수 없는 만큼 규모의 경제를 꾀하겠다는 복심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WDC는 각각 1714억엔(1조7000억원), 4억700만달러(5700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스마트폰 성장세가 꺾이면서 모바일 채용량이 줄어든 데다가 경기침체로 서버향 채용량도 부진했던 영향이 컸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은 국내 제조사 2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과 미국 제조사 2곳(WDC, 마이크론), 일본 제조사 1곳(키옥시아) 등 5개 업체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랜스포스에서 본 2023년 점유율 예상치를 보면 삼성전자가 34% 점유율로 시장 1위 업체다. 뒤를 이어 키옥시아(21.5%), SK그룹(15.3%), WDC(15.2%), 마이크론(10.3%) 순이다. 

그런데 키옥시아와 WDC는 지난 1999년 합작법인(JV)을 설립한 이래 연구개발(R&D), 웨이퍼 전공정 생산 등을 공동 진행해 온 전략적 동맹 관계다. 이에 공동 생산공장(팹)에서 생산한 낸드플래시를 투자 지분(키옥시아 50.1%, WDC 49.9%)에 따라 나눠 가져왔다.

두 회사 간 합병에는 복잡한 셈법이 얽혀있다. 지난 2017년 미국 밴처캐피털(VC) 베인캐피털은 한·미·일 컨소시엄을 꾸려 일본 도시바로부터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를 인수했다. 이후 키옥시아의 기업 가치가 계속 낮아지며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 회수(엑시트)에 실패했다.

WDC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WDC에 지분 투자한 미국 행동주의 펀드 앨리엇은 주가 부양을 위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부와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분할을 요구했다. 그러나 낸드플래시 사업부 분리에도 불구, 지난해 하반기부터 찾아온 유례없는 메모리 다운사이클에 주가는 더 크게 하락했다.

문제는 낸드플래시 시장이 1인 1 스마트폰 시대를 맞았던 지난 2018년 황금기로 돌아가기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앨리엇과 베인캐피털이 기업 가치 부양을 위해 협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넘어서며 시장 1위 사업자 삼성전자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된다. 

두 회사 간 합병 카드로 1위 사업자로 올라서게 되면 시장 경쟁 강도가 완화되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를 통해 공급 과잉에 따른 낸드플래시 판가 하락 현상을 막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정식 합병 절차를 밟으면 각국 반독점 기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키옥시아가 WDC에 자산(생산 팹)을 매각하고, WDC가 그에 대응하는 지분을 키옥시아에 넘기는 방식으로 합병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 사 합병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삼성전자 시장 점유율이 합병 법인에 밀린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실제 누적된 기술력과 생산력 그리고 조직 운영 효율성을 보면 삼성전자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