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웅 기자] KT 차기 수장을 뽑는 과정이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결정된 윤경림 사장이 내정 보름 만에 사퇴를 고심하고 있어서다. 윤 사장의 후보직 사퇴가 확정될 경우 KT는 CEO 없이 4월을 맞이하게 된다. 잇따른 후보자 낙마로 KT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 사장은 지난 22일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후보직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진의 만류로 윤 사장의 사의 표명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은 상태다. KT 측도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윤 사장 사퇴에 따른 후폭풍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관련 업계는 윤 사장이 여권 등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사장은 이사회 현직 멤버로 출마 자격이 없다"며 "이사회가 윤 사장을 후보군에 넣어 그들만의 이익 카르텔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사장은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내정된 직후 '지배구조개선 TF'를 구성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 있는 인사 영입을 강행하는 등 정부와 여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윤 사장의 취임 의지도 꺾인 것으로 보인다. 

윤 사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윤 대표는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구현모 대표의 친형이 운영하는 회사가 현대차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차 부사장이었던 윤 사장이 도움을 줬다는 의혹에서다. 이에 검찰은 윤 사장과 구 대표에 대한 혐의 고발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KT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당사자인 윤 사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검찰 수사에 대한 심적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사회가 윤 후보 사퇴를 수용한다면 KT는 네 번째로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대표이사 후보를 확정할 때까지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주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새로운 후보를 세운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구 대표가 국민연금, 여권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연임을 포기하면서 KT는 차기 CEO 후보 인선에만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썼다.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올해 경영계획조차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 통상 11~12월에 진행됐던 정기 인사와 조직 개편도 완전히 손을 놓은 상태다. 

KT새노조는 격랑 속에 빠진 현 상황을 두고 윤 사장과 이사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KT새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윤 사장의 사의 표명으로) 회사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며 "이제 와 사퇴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3번에 걸친 후보 선출에 실패한 KT 이사회에 준엄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위기를 초래한 이사진은 전원 사퇴하고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경영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영화 20주년을 맞이한 KT에 대한 외풍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구 대표에 이어 이사회가 공개 경선 방식으로 새로 선임한 윤 사장마저 중도 낙마할 조짐을 보이면서 KT를 향한 관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KT의 연이은 후보직 사퇴에 대해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공세를 못 버티고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실이 (윤 사장에게) 최후통첩을 날렸고, 검찰과 경찰이 KT 수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며 압박한 결과"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KT 등 민간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고, 비정상적인 개입을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