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저축은행·자산운용 출입처에서 본 나비효과
부도덕한 소수의 잘못이 업계 전체의 책임으로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4일 07시 5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Pixabay


[딜사이트 김승현 기자]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우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었으나, 현재는 경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광범위한 용어로 사용된다. 과학이든, 사회든, 좋은 현상이든 나쁜 현상이든,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날갯짓하는 나비가 있다.


금융, 증권업계에 출입하는 동안 두 번의 큰 나비효과를 봤다. 저축은행 업계와 자산운용 업계에서다.


먼저 저축은행을 취재하면서 든 생각은 '규제에 막혀 성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저축은행은 거의 모든 영업활동에 대해 감독 당국의 감시를 받는다. 여·수신, 대출 등 금융 업무에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예금보험료도 예금의 0.4%로 시중은행의 5배 높은 수준을 부담하고 있다.


출입 당시 저축은행 업계의 불만은 끝날 줄 몰랐다. 특히 금융권 내 가장 높은 수준의 예보료 납입 비율은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셌다. 예보료는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가 지급불능 상태에 이르면 예금을 환불해 주기 위해, 은행, 보험사 등 금융사로부터 일정한 비율로 징수하는 보험료다. 파산 리스크에 따라 금융권마다 다른 예보 요율을 적용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타 금융권 대비 더 많은 규제를 받고, 감시를 받게 된 데는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들어 저축은행들은 본업인 서민 대출이 아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무자비로 손대기 시작했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실화가 나타나면서 2011년 금융위원회는 7개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결국 이들 저축은행 중 회생 불가한 곳은 제 3자매각 또는 예금보험공사가 소유한 가교저축은행으로 넘어갔다.


당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는 27조2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아직도 회수해야 할 금액이 11조원에 이르며, 저축은행의 손실을 다른 금융사들이 보전해주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운용 중이다. 저축은행 외 다른 금융사는 낸 예보료에서 45%를 떼 저축은행 특별계정에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만 미뤄보면 '금융당국이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문제를 일으킨 저축은행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011년 문제의 저축은행들은 이미 금융지주나 타 회사로 흡수, 정리됐다. 현재의 저축은행들은 과거 다른 회사가 저지른 일을, 같은 업권에 있다는 이유로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 취재원은 "문제를 일으킨 곳과 처리하는 곳이 따로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산운용업계는 저축은행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수조원대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시작이다. 최근 신생 또는 소규모 자산운용사들의 최대 걱정은 '펀드설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진 것은 물론, 수탁사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는 운용사, 수탁사, 판매사가 함께 있어야 만들어진다. 운용사가 펀드를 설계하고 굴리면, 증권사나 은행 등 판매사가 펀드를 판매한다. 이 사이에서 수탁사는 펀드에 들어온 자산을 보관하고 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파는 역할을 한다. 이들 중 한 곳이라도 없으면 펀드를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수탁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앞서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당국이 수탁기관에 대한 책임을 대폭 확대되자, 수탁사들은 아예 수탁업무를 맡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수탁 기관도 사모펀드를 감시·감독하도록 했다. 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운용사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수탁사에 돌아왔다. 수탁수수료는 0.02%~0.04% 수준에 그치는 데 비해 책임이 대폭 커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모펀드 시장 침체로 이어졌다. 실제로 사모펀드 신규설정액은 2019년 111조원에서 지난해 말 63조원으로 40% 넘게 감소했다. 업계는 올해 신규 펀드 설정 규모가 더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문을 닫거나, 신규 사업을 포기하는 운용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옵티머스, 라임 사태 피해자는 투자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산운용업계 한 취재원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도입을 시작으로 향후 더 많은 규제가 업계를 죄어올 전망이다.  


저축은행과 자산운용사 모두 동종 업계 내 소수의 잘못으로 시장 전체(다수)가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다, 시장을 위기에 몰아넣은 소수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 소수가 될 수 있다. 나 하나의 날갯짓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양심 있게 행동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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