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코퍼 승계 교통정리…장녀 '상징성'·장남 '경영권'
승계 고심한 정몽혁 회장…딸은 개인 창업회사, 아들은 대권 '얼개'
이 기사는 2025년 04월 21일 07시 3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공=현대코퍼레이션)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이 오너 3세 승계와 관련해 묘안을 찾은 모양새다. 과거 현대그룹 오너가 사이에서 발발한 이른바 '왕자의난'을 지켜본 만큼 분쟁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형평성에 초점을 뒀다는 분석이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현이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 대표이사는 그룹이 아닌 오너가 개인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는 현대코퍼레이션그룹과 지분 관계가 얽혀있지는 않지만, 정 회장이 창업한 회사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둘째이면서 장남인 정두선 현대코퍼레이션 부사장은 적통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과제를 품고 수년째 험지에서 머무르고 있다.


◆ 2살 때 부친 작고, 정주영 창업주 보살핌…현대정유 퇴임 후 창업


재계 등에 따르면 정 회장은 범(汎)현대가 '몽'자 돌림 중 유독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부친이 일찍 작고하면서 친척들 손에서 자랐고, 물려받을 계열사가 없었던 터라 경영 승계처를 확보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1961년생으로 올해 64세인 정 회장은 고(故)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정 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으로 독일 유학 중이던 1962년 사망했다. 정 씨를 유독 아꼈던 정 창업주는 조카인 정 회장을 끔찍이 아꼈다고 전해진다. 경복고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수리경제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1993년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에 오르며 경영 참여를 시작했다. 석유화학 계열사를 정 회장 몫으로 떼어 주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해 온 정 창업주의 뜻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2002년 4월 현대정유의 적자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퇴진했다. 외환위기 이후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이 조성된 데다, 무리한 차입에 따른 경영난이 가중된 영향이다. 정 회장은 약 2개월 뒤인 6월 부인 이문희 여사, 자녀들과 함께 건축자재 및 조명기구 회사인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하며 독자노선을 걷는 듯 했다.


정 회장이 다시 현대가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다. 친형제처럼 지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고 정주영 5남)이 현대차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사인 아주금속의 대표이사를 맡겼기 때문이다. 아주금속(메티아로 사명 변경 후 현대위아로 흡수합병)은 자동차용 주물소재를 제작해 현대차·기아로 납품하는 회사였다.


범현대가 1·2세들은 정 회장의 재기를 바랐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009년 현대종합상사(현 현대코퍼레이션)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정 회장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은 채권단이 들고 있던 현대종합상사 지분 50%+1주를 2351억원에 인수했다.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되며 성공적으로 경영에 복귀한 정 회장은 이후 2015년 말 현대종합상사 최대주주인 현대씨앤에프(현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경영권을 확보하며 온전한 '내 회사'를 가지게 됐다.


◆ 장남 정두선 부사장 후계자 '유력'…장녀는 오너 개인회사 경영


주목할 부분은 정 회장이 슬하의 3남매 중 장남에게 현대코퍼레이션의 차기 대권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범현대가인 만큼 딸보다는 아들을 내세우는 유교적인 가풍을 따를 것으로 예상돼서다. 실제로 정 부사장은 20대 중반부터 경영 수업을 시작한 반면, 2살 누나인 정 대표는 현대코퍼레이션그룹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1990년생인 정 부사장은 런던 커뮤니케이션 대학(L.C.C)에서 마케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 현대코퍼레이션 법무팀 차장으로 입사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품목을 다루고, 각종 계약을 체결하는 종합상사의 특성상 법무팀은 핵심 조직으로 분류된다. 정 부사장은 법무팀 경험을 살려 현대코퍼레이션의 전체적인 경영 흐름을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 가계도(그래픽=이동훈 기자)

정 부사장은 2019년 임원(상무보)으로 승진하며 현대코퍼레이션 싱가포르 법인인 현대퓨얼스 법인장으로 이동했다. 현대퓨얼스는 해운사에 선박 연료를 공급하는 벙커링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특히 글로벌 해운업계가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만큼 친환경 연료 벙커링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정 회장 장녀인 정 대표는 2020년부터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에서 일하고 있다. 정 대표는 남동생인 정 부사장과 다르게 나이 외에는 공개된 정보가 없다. 그가 처음으로 존재감을 나타낸 것은 2019년 8월 그룹 지주사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주식을 매수하면서다. 당시 정 대표는 2만928주를 매입했는데, 경영수업 중인 정 부사장(2만5056주)에 비해 적었던 만큼 주목도는 낮았다. 정 대표와 정 부사장은 2020년 3월에도 지주사 주식을 사들였는데 각각 2만주, 2만4000주였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 대표가 2022년부터 동생보다 더 많은 지주사 주식을 확보하기 시작한 점이다. 정 대표는 2022년 8월 3만주를 취득했으며, 올 4월에도 2만4863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그 결과 현재 정 대표와 정 부사장의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지분율은 1.05%, 0.77%가 됐다. 두 사람의 지분 격차는 0.28%(2만5476주)에 그치지만, 누나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 현대家 '왕자의난' 염두, 장녀 섭섭지 않게 챙겨줘…"승계 시기상조"


재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과거 현대가 형제의난 당사자는 아니지만, 갈등을 곁에서 지켜본 만큼 공정하게 승계 구도를 짜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현대그룹은 2000년 창업주 차남인 정몽구 명예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차기 대권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를 비롯한 10개 계열사를 가지고 현대그룹에서 분리했고, 창업주 6남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독립했다. 


정두선 현대코퍼레이션 부사장. (출처=정두선 부사장 개인 SNS)

범현대가의 경우 아직까지 '남매의 난'이 발생한 전례가 없다. 하지만 최근 여성 오너일가의 경영 참여 의지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 간 다툼이 빈번하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한진그룹이나 한미약품그룹, 아워홈, 한국타이어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정 회장도 오너 3세 교통정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 회장은 장녀에게 상징성이 큰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물려주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매출이 339억원으로 크지 않지만, 현대 계열 건설회사의 공사를 수주하거나 알짜 회사 지분 투자를 통한 배당 등으로 고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 대표가 지주사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배경에도 장녀에게 가외수익을 챙겨주기 위한 정 회장 뜻으로 풀이된다. 정 부사장은 후계자로 낙점됐지만, 경영권을 이양 받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건재한 만큼 적지 않은 기간 혹독한 경영 수업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충분한 경영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점도 있다.


이와 관련, 현대코퍼레이션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범현대가 오너2세 중 젊은 편이고, 활발하게 경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오너 3세 승계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한편 정 회장 차남인 정우선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과장은 1997년생으로 지주사에서 신사업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정 과장의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지분율은 0.5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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