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광호 기자] STX그린로지스가 만기를 약 2년 남긴 전환사채(CB)를 조기 취득했다. 당초 83억원을 들여 남은 CB 75억원어치를 모두 사들일 계획이었지만, 사채권자와 재협의를 거쳐 원금 50억원 수준으로 취득 규모를 낮췄다. 일시적으로 단기 자금 부담을 덜어냈지만, 계열사 차입금에 대한 담보 제공과 잇따른 소송 등 추가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유동성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번 STX그린로지스 제2회 사모 CB 취득 거래는 당초 계획보다 규모가 줄었다. 지난 12일 잔여 CB 75억원 전액을 83억원에 취득하겠다고 공시했다. 83억원의 산정근거는 원금 및 이자였다. 이후 사채권자들과 계약 조건 변경을 협의한 끝에 19일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취득 대상은 원금 50억2500만원으로 조정됐다. 이어 20일 별도의 이자 가산 없이 원금 100% 가격에 사들였다.
사채권자 10곳(사모펀드 7개, 증권사 고유계정 3곳)이 모두 보유 물량의 67%씩만 매도하면서 잔여 CB 24억7500만원은 취득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CB는 2024년 10월 80억원 규모로 발행돼 이 중 5억원만 주식으로 전환됐다. 전환가액이 1만560원으로 30일 종가(1836원)의 5.8배에 달해 사채권자 입장에서는 주식 전환보다 원금 회수가 유리한 구조다.
문제는 자금 여력이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연결 현금및현금성자산은 6억원에 불과하다. 유동부채는 403억원으로, 유동자산 158억원보다 245억원 많았다. 상반기 현금흐름은 영업활동에서 105억원이 유입됐지만, 투자활동에서 79억원, 재무활동에서 115억원이 유출됐다. 재무활동 유출액 중 리스부채 상환이 104억원을 차지했다. 반기 말 수치만으로 지급 능력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50억원에 달하는 취득 대금이 집행되면서 유동성 압박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처럼 반기 말 기준 곳간이 빈 상태였음에도 회사는 이번 CB 만기전 취득 결정 공시 당시 취득자금의 원천을 외부 차입이 아닌 '자기자금'으로 명시했다. 시장에서는 반기 말 6억원 안팎의 현금만 들고 있던 회사가 석 달여 만에 50억원을 치러낸 것을 두고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하반기 해운 업황 개선에 따른 영업현금 유입이나 금융자산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매입채무 결제를 늦춰 현금을 확보하거나 은행 단기 여신을 당겨 빚으로 빚을 갚는 형태의 '돌려막기식' 자금 집행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동성 부담은 이번 CB 취득에 그치지 않는다. 계열사인 STX해운의 차입금을 위해 주요 자산을 담보로 내준 상태여서다. STX해운은 썬에이스해운 인수 자금으로 부산은행에서 150억원을 빌렸고, STX그린로지스는 이 차입금에 대해 보유 중인 STX해운 주식을 담보(설정금액 220억원)로 제공했다.
지난 23일에는 이사회를 열어 선박 1척(설정금액 110억원)을 추가 담보로 내놨다. 같은 날 정정공시를 통해 해당 담보 기한을 오는 12월31일로 확정했다. 150억원 차입금에 330억원 규모의 담보가 걸린 셈이다. 이와 별개로 선박 1척(55억원)도 STX해운을 위한 담보로 잡혀 있다.
이에 따라 타인을 위해 제공한 담보 총 잔액은 지난 8월 437억원에서 23일 기준 534억원으로 두 달 새 100억원 가까이 불었다. 지난해 말 연결 자기자본(301억원)의 1.8배다. 이 중 STX해운 관련 담보 385억원은 모두 연말에 기한이 끝난다. 두 달 안에 STX해운이 차입금을 갚거나 만기를 다시 늦추지 못하면 담보권 실행으로 계열사 지분과 영업용 선박을 잃을 수 있다. CB 취득 대금 마련도 벅찬 상황에서 계열사 차입금에 대한 담보 부담까지 겹쳤다.
소송 관련 부담도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STX그린로지스를 상대로 대지급금 원금 99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6월에는 80억원 규모의 청구채권을 근거로 회사 소유 선박에 대한 가압류 결정도 받아냈다. 우리은행도 옛 모회사 STX의 분할 전 채무에 대한 상법상 연대책임을 근거로 774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농협은행(30억원)과 신한은행(27억원) 역시 같은 근거로 각각 지난 7월과 8월 소송을 제기했다. 네 은행의 청구액을 합하면 930억원으로, 지난해 말 연결 자기자본의 3배를 웃돈다. 채권자들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CB 취득 대금 부담까지 겹쳐 법적·재무적 이중고가 가중되는 모습이다.
한편, 딜사이트는 이번 CB 취득 대금 재원과 추가 담보 제공 배경 등 계열사 담보 부담 해소 방안을 묻기 위해 STX그린로지스 측에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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