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수민 인턴기자] 미국에서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전력망의 부담이 커지자,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는 '미국 배터리 주도권 확보 국가전략(A National Strategy for American Leadership in Batteries)'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고, 2035년까지 배터리 기술과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DOE는 블룸버그NEF(BNEF)와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의 자료를 인용해 미국의 운송·에너지저장용 배터리 수요가 지난해 179GWh에서 2035년 707GWh로 약 4배 증가할 것으로 봤다. 그리고 데이터센터는 2030년 미국 배터리 저장 수요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배터리 산업 육성은 국내 기업에 새로운 기회지만 수혜는 엇갈릴 전망이다. 미국에서 ESS용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기업은 수요 확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미국 현지 생산시설이 없는 소재업체는 직접적인 수혜가 제한될 수 있다.
◆ 2030년 배터리 공급망 구축…전력망·소재 투자 확대
DOE는 배터리 공급망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로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등 중간소재를 지목했다. 일부 소재와 배터리 부품에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능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DOE는 핵심 광물 채굴부터 정제, 소재 생산, 배터리 제조까지 이어지는 미국 내 공급망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자재·중간소재 투자, 연구 성과 상용화, 제조공정 혁신, 전력망 현대화, 동맹국 협력, 전문인력 양성 등 6대 전략을 제시했다.
배터리 제조 가속 컨소시엄(BattMan)도 출범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제조 비용을 낮추고 상용화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기상이변이나 정전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ESS 기술의 실증과 도입도 지원한다.
전력 인프라 확충을 위한 금융 지원도 이어졌다. 같은 날 DOE는 미국 전력회사 앨리언트에너지(Alliant Energy)에 51억달러(6조8400억원)의 대출 계약을 최종 확정했다. 아이오와주와 위스콘신주에 약 1500MW 규모의 가스발전소를 신설하고, 1000MW 규모의 배터리 ESS와 약 20억3피트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시설을 구축한다.
◆ LG엔솔·삼성SDI, 美 현지 생산 확대…ESS 수주 가속
미국에서 ESS용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미 확보한 생산·수주 기반을 바탕으로 시장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8월 미시간주 랜싱 공장을 본격 가동하며 북미 ESS 생산거점 5곳을 확보했다. 올해 말까지 북미에서 연간 50GWh 이상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지난 8월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북미 중심의 ESS 수주잔고는 약 140GWh다. 올해 상반기에만 3조원 이상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전력회사 DTE에너지와 6GWh 규모의 ESS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시설을 ESS용으로 전환하며 현지 공급능력을 확대한 결과다.
삼성SDI도 29일 3분기 매출이 4조685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40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13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AI 데이터센터용 ESS와 배터리백업유닛(BBU), 원통형 배터리 판매 확대 등이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삼성SDI는 올해 미국 ESS 시장에서 60GWh 이상의 수주를 확보했다. 이달부터 인디애나주 스타플러스에너지(StarPlus Energy·SPE) 공장에서 각형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지난 26일에는 미국 알파오메가파워(Alpha Omega Power)와 1GWh 규모의 ESS 공급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해당 제품은 SPE 공장에서 생산해 올해 말까지 납품할 예정이다.
◆ 美 공장 없는 에코프로비엠·SKIET…직접 수혜 제한
에코프로비엠은 미국 내 양극재 생산시설이 없다. 주요 생산거점은 국내 오창·포항과 헝가리 데브레첸이다. 주력 제품은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이며, ESS용 리튬인산철(LFP) 양극재는 오창에 연간 약 4000톤 규모의 준양산 설비를 확보한 상태다.
지난 4월 에코프로비엠은 실적발표에서 북미 시장의 정책 불확실성과 과열된 가격 경쟁 등을 이유로 ESS용 LFP 양극재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튬 가격 상승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후 7월 공시에서도 연산 약 3만톤 규모의 신규 LFP 공장 투자 시점과 규모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 분리막 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미국에 생산시설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올해 중국 공장 매각을 결정하고 국내 증평 공장의 상업 생산 중단을 추진하면서 생산거점을 폴란드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SKIET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754억원, 영업손실은 1367억원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실적이 악화된 가운데 미국 현지 생산 확대보다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두 기업이 미국 배터리 시장 성장의 수혜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SKIET는 ESS용 분리막 개발을 확대하고 있으며, 에코프로비엠도 기존 삼원계 ESS용 양극재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고객사에 대한 소재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현지 생산 기반을 이미 확보한 기업들과 비교하면 직접적인 정책 수혜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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