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자회사 솔리다임 상장을 둘러싸고 기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각각 증시에 상장하는 ‘중복상장’으로 SK하이닉스의 투자 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모자금의 활용 방식과 상장 전 출자가격이 기존 주주가치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일 발간한 ‘SK하이닉스 솔리다임 상장, 성장과 주주가치를 잇는 조건’ 보고서에서 솔리다임 상장을 판단할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상장 전 투자자들이 적정한 가격에 지분을 확보했는지, 공모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기존 주주에게 이익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다.
자회사 지분 일부를 외부에 내주더라도 적정한 대가를 받고 성장 투자나 주주환원에 활용한다면 기존 주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상장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더라도 그 이익이 모회사 주주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논란은 이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도 관련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에 해당한다는 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 AI 저장장치 수요 확대…美 공장 투자도 검토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2021년 출범한 기업이다. SSD는 반도체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다. 솔리다임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기업용 SSD를 주력으로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솔리다임의 모회사인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스(NPS)의 낸드 사업 매출은 올해 상반기 12조25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조3600억원보다 약 265% 늘었다. 순이익도 1300억원에서 5조8400억원으로 증가했다.
생산 거점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장 필요성을 더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솔리다임의 주요 낸드 생산기지인 중국 다롄 공장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에 연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때문에 솔리다임은 미국에 신규 낸드 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장 건설이 현실화하면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솔리다임이 이르면 내년 미국 증시에 상장해 약 10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상 기업가치는 최대 1000억달러다. 달러당 1360원을 적용하면 각각 13조6000억원과 136조원이다. 다만 상장과 미국 공장 건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신주냐 구주냐…공모 구조보다 중요한 자금의 쓰임
박 연구원은 솔리다임 상장이 기존 주주가치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려면 공모 방식에 따른 자금 흐름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기업공개는 신주 발행과 구주매출로 구분된다. 신주 발행은 기업이 새로운 주식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조달한 현금이 상장 기업에 남아 설비투자 등에 사용될 수 있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일부를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주식이 발행되지 않는 대신 매각 대금이 주식을 판 기존 주주에게 돌아간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NPS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SK하이닉스는 NPS 지분 98.16%를, NPS는 솔리다임 지분 96.86%를 갖고 있다. 두 비율을 곱하면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간접 지분율은 약 95.08%다.
박 연구원은 솔리다임의 공모 전 지분가치를 136조원, 조달액을 13조6000억원으로 놓고 두 방식을 비교했다.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전제 아래 SK하이닉스 몫의 지분가치와 현금 합계는 두 경우 모두 약 129조원으로 같았다.
공모 물량 전부를 신주로 발행하면 SK하이닉스의 간접 지분율은 약 86.4%로 낮아진다. 대신 솔리다임에 현금이 들어와 전체 지분가치가 커지므로 SK하이닉스 몫의 가치는 유지된다.
NPS가 보유한 솔리다임 주식을 팔아 공모액 전부를 마련하면 간접 지분율은 약 85.3%가 된다. 남은 지분가치는 약 116조원이다. 여기에 NPS가 받은 매각 대금 중 SK하이닉스 지분에 해당하는 약 13조3000억원을 더하면 총액은 비슷하다.
신주 발행으로 확보한 돈은 투자 성과를 내야 한다. 구주매출 대금도 NPS의 배당을 거쳐 SK하이닉스로 넘어와야 주주환원 재원이 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구주매출로 확보한 100억달러 가운데 SK하이닉스에 귀속되는 금액을 전액 특별배당한다고 가정할 경우 주당 약 1만8300원의 배당이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난 13일 종가의 약 1.3%이자 2025사업연도 주당 배당금 3000원의 약 6배에 해당한다.
◆ 상장 전 계열사 출자 가격도 변수…주주보호 방안 주목
솔리다임이 상장하기 전 SK그룹 계열사들이 얼마에 지분을 확보했는지도 기존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열사들이 실제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지분을 취득했다면 향후 상장으로 발생하는 가치 상승의 혜택이 기존 SK하이닉스 주주보다 해당 계열사에 더 많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은 NPS에 총 11억1000만달러를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실제 출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면 향후 솔리다임의 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도 나눠 갖게 된다.
문제는 지분을 취득하는 가격이다. 계열사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하면 기존 주주에게 돌아갈 가치 일부가 해당 계열사로 옮겨갈 수 있다.
보고서는 SK㈜의 회계 장부에 기록된 NPS 지분금액을 토대로 NPS 전체 가치를 약 16조원으로 계산했다. SK텔레콤의 신주 취득가격을 기준으로는 약 63조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를 솔리다임의 예상 상장가치 136조원과 단순 비교해 저가 취득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평가 대상과 시점, 계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앞으로 이뤄질 추가 출자와 상장 전 외부 투자 유치의 가격·조건을 확인해야 한다고 봤다.
금융당국도 주주보호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솔리다임 상장을 중복상장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증권신고서 제출 대상인지는 금융위의 해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외 상장이라도 모회사 이사회는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보고서는 미국 공장 투자의 필요성과 자회사 상장의 필요성을 따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회사 출자나 차입 등 다른 수단보다 상장이 기존 주주에게 유리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9월 4일 공시에서 솔리다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오는 28일 실적발표와 12월3일 예정된 재공시에서 자금 활용 방향과 주주보호 방안이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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