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가파른 경사면을 거꾸로 달리고, 공중에서 회전하고, 하늘을 난다. 테슬라가 공개한 차세대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Roadster)'의 모습이다.
화려한 기술 시연이지만 이 같은 기능이 일상적인 도로 주행에서 얼마나 활용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차량이 거꾸로 달릴 이유도, 날아오를 공간도 없는 데다 실제 도로 주행에는 규제까지 따른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테슬라는 미국 텍사스주 맥그리거에 위치한 스페이스X 로켓 시험시설에서 2세대 로드스터를 공개했다. 이날 시연에서는 차량 하부의 흡착 시스템을 이용해 경사면에 거꾸로 매달린 채 주행하고, 스페이스X의 냉가스 추진기(Cold-gas Thruster)를 활용해 공중에서 자세를 바꾼 뒤 착지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기존 자동차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이 차를 개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조차 앞서 로드스터가 회사 재무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인정한 바 있다.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테슬라가 자율주행과 로봇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상황에서 수익 기여마저 제한적인 스포츠카에 개발 자원을 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매량보다 브랜드 가치…로드스터에 담긴 '헤일로 카' 전략
로드스터를 바라보는 시장의 해석 가운데 하나는 기술력과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헤일로 카(Halo Car)' 전략이다. 로드스터 자체로 큰 수익을 내기보다는 테슬라의 최고 기술력을 보여주고, 이를 브랜드 전체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는 구상이라는 분석이다.
헤일로 카는 제조사의 기술적 역량을 상징하는 고성능 차량을 뜻한다. 일반적인 양산차와 달리 판매량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높이는 데 무게를 둔다.
세스 골드스타인(Seth Goldstein, CFA)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테슬라에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줄 고성능 고급 차량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드스터가 테슬라의 새로운 헤일로 카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했다.
로드스터의 판매 방식부터 대중형 전기차와 거리가 멀다. 테슬라는 일반 퍼포먼스(Performance) 모델의 예약금으로 5만달러(6680만원), 가속용 추진기를 탑재한 스러스트(Thrust) 모델에는 25만달러(3억3400만원)를 요구하고 있다. 최종 판매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높은 예약금과 특수한 사양을 고려하면 판매 대상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크 역시 로드스터의 재무적 중요성을 낮게 평가한 바 있다. 그는 2023년 로드스터를 회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사업으로 표현하며 테슬라의 재무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전략은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경쟁 상황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확대하면서 테슬라를 비롯한 기존 전기차 업체들의 경쟁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의 승용 신에너지차 수출량은 55만8000대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63.5%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중국 내수시장 판매량은 18% 감소했지만 업체들이 생산 규모를 유지하면서 해외 판매를 확대한 결과다.
테슬라도 기존 전기차 사업에서 경쟁력 유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2년간 차량 판매가 감소한 가운데 올해 3분기 인도량은 반등했지만,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과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로드스터의 기술적 상징성이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동차에 로켓 기술까지…머스크가 동원한 스페이스X
로드스터의 기술적 차별점은 우주항공 분야의 추진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했다는 데 있다. 기존 고성능 전기차가 모터 출력과 배터리 성능, 공기역학적 설계 등을 중심으로 경쟁했다면 로드스터는 별도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추가했다.
핵심은 스페이스X 기술을 활용한 냉가스 추진기다. 고압으로 압축한 가스를 분사해 추진력을 얻는 장치로, 바퀴의 구동력과 별개로 차량에 힘을 더해준다. 이를 통해 타이어 접지력에 의존하는 기존 자동차의 가속 한계를 일부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날 공개된 시연에서는 로드스터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97㎞)까지 0.81초 만에 도달하는 기록을 제시했다. 테슬라는 최고속도 역시 시속 230마일(370㎞) 이상이라고 밝혔다.
로드스터에는 차체를 노면에 밀착시키는 흡착 시스템도 적용됐다. 차량 하부의 공기를 빨아들여 아래 방향으로 누르는 힘인 다운포스를 만드는 장치다. 일반적인 자동차가 주행 중 발생하는 공기 흐름을 활용해 다운포스를 확보하는 것과 달리 정지 상태나 저속에서도 강한 다운포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머스크는 이러한 기술이 서킷 주행과 코너링 성능을 높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사면에 거꾸로 매달리는 시연 자체는 실용성이 낮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은 실제 주행 성능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이날 행사에서 테슬라와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이 긴밀하게 협력해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차량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제조 기술과 우주항공 기술을 결합해 기존 완성차 업체와 차별화된 성능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모두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이다. 그동안 각각 전기차와 우주 발사체라는 서로 다른 산업에서 기술을 축적해 왔지만, 로드스터를 통해 두 분야의 기술을 하나의 제품에 결합했다. 스페이스X의 추진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하면서 테슬라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범위도 넓어진 셈이다.
진 먼스터(Gene Munster) 딥워터자산운용 매니징파트너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시연을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을 압도하기 위한 기술력 과시라고 평가했다. 로드스터가 상업적 가치보다 엔지니어링 역량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직접 운전할 차”…주행 성능에 집중한 이유
로드스터에 극단적인 주행 성능을 구현한 데는 머스크의 자동차 사업 구상도 반영됐다. 장기적으로 자율주행 차량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되,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마지막 차량만큼은 기존 자동차의 성능을 뛰어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이번 공개 행사에서 로드스터가 장기적으로 테슬라가 생산하는 유일한 수동 운전 차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동 운전 차량을 하나만 남긴다면 성능을 한계까지, 나아가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는 올해 모델 S와 모델 X 판매를 중단하고 관련 생산 공간을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 생산에 활용하기로 했다.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자율주행 전용 차량 '사이버캡(Cybercab)'도 선보이며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과 로봇 사업에 무게를 싣고 있다.
로드스터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운전자가 직접 차량을 조작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일상적인 이동은 자율주행 기술에 맡기는 대신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에는 기존 자동차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주행 성능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머스크 역시 성능 못지않게 운전의 재미를 강조했다. 그는 로드스터가 반드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최적화한 차량은 아니라면서도 운전의 즐거움을 10점 만점에 11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머스크가 제시한 구상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테슬라는 2017년 2세대 로드스터를 처음 공개하면서 2020년 인도를 예고했지만 생산 일정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이번에는 양산 목표를 2028년으로 제시했다.
실제 주행 과정에서의 안전성과 규제 문제도 남아 있다. 테슬라에 따르면 공중 이동 기능을 갖춘 로켓(Rocket) 모델은 현재 공공도로 주행 승인을 받지 못했다. 해당 모델은 초청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할 예정이며, 공개된 시연 성능이 실제 양산 차량에서도 구현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로드스터의 기술적 성능과 별개로 기존 사업의 수익성에 더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는 오는 21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경쟁 심화와 자율주행·로봇 사업의 투자 확대 속에서 수익성과 현금창출 능력이 주요 평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조시 길버트(Josh Gilbert) 이토로(eToro) 수석 애널리스트는 로드스터가 선보인 기술보다 테슬라의 이익률과 현금흐름이 투자자들에게 훨씬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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