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수민 인턴기자] 정부가 전국 농지의 불법 소유·이용 실태를 조사하면서 뒤늦게 구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령이나 상속 등의 사정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촌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런 농촌 현실을 어떻게 다룰지 먼저 정한 뒤 조사에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일 '농지 전수조사, 서두른 만큼 놓친 것들' 보고서를 통해 이번 농지조사에 대해 "속도에 치중하다 보니 사업의 기획과 집행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가가 앞으로 어떤 농지를 얼마나 보전하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단속과 적발에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 조사 전 제도부터 정비했어야
올해 전수조사를 앞두고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농업의 미래 비전과 농지 제도를 정비하는 첫걸음이 되도록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 직전인 5월7일에도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가 내세운 '체계적인 농지 정책'의 밑그림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농촌의 불법 임대차는 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고령화와 상속, 노후자산 유지,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의 농지 수요가 함께 얽혀 있어 단순 적발보다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제도 정비보다 조사와 처분 강화에 속도를 냈다.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농지 전수조사 지시 이후, 3개월도 되지 않아 지난 5월 국회에서 농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개정안이 통과된 지 11일만에 전수조사가 곧바로 시작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높은 땅값으로 귀농·귀촌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농지 투기가 가격을 끌어올려 청년농과 귀농인의 진입을 막는다고 보고 전수조사와 처분 강화에 속도를 냈다.
준비 부족은 조사 과정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정부가 5월 초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기본조사 대상 농지는 115만ha였지만, 조사 과정에서 136만ha로 늘었다. 필지별 취득일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조사 대상이 21만ha, 18.3% 증가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조사 종료 시점은 당초 계획한 7월 말 그대로 유지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조사 대상이 크게 늘었는데도 기한을 연장하지 않았다며 '기한 내 완료'라는 행정 목표를 맞추는데 치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사의 정확성이 낮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사해보니 드러난 '법과 현실의 괴리'
조사 과정에서는 단순한 투기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다. 상속으로 농지를 보유하게 된 비농업인이나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다른 농민에게 땅을 빌려준 농업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농지 소유나 임대 자체를 일률적으로 위법 또는 투기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인구의 중위연령은 65.3세,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은 67.7세였다. 고령농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상당한 농지가 상속과 임대차, 매매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하고 직접 경작한다'는 기존 전제만으로 현재 농촌을 설명하기 어렵다.
정부도 조사 이후 대응 방향을 바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월 투기가 명백한 농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분하되, 상속·고령화나 관행적 임대차에서 발생한 위반은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과거 누적된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 2분기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 농지법 조항도 개정할 계획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특별조치법과 농지법 개정이 "당초 조사에 선행했어야 할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조치가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일부 줄일 수는 있지만, 단순한 처분 유예나 ‘시간 벌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고서는 그동안 미뤄진 농지 조사의 의미를 폄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조사를 중단하거나 성과를 부정하기보다, 결과를 장기적인 농지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가 우선 어떤 농지를 얼마만큼 보전하고 어떻게 이용할지를 정하는 10년 단위의 '농지의 관리에 관한 기본방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고령농이 농지를 내놓을 경우 실제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도록 농지 소유·이용 구조의 계획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농지위원회와 농어업회의소를 농지 관리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중앙정부가 전국 농지를 일률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지역 단위에서 실제 경작과 임대차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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