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기 위한 초대형 공장 ‘테라팹(Terafab)’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구매를 중심으로 커졌던 AI 투자가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으로까지 넓어지는 모습이다.
테라팹이 초기 공정에 인텔의 차세대 14A 기술을 활용할 계획인 만큼 기존 인텔 공급망에 진입한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에도 추가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준호·박준규·서지현 등 삼성증권 연구원은 22일 발간한 ‘Terafab: 반도체 Gigafactory가 온다’ 보고서에서 테라팹을 AI 투자 범위가 반도체 구매에서 제조설비로 확대되는 사례로 평가했다.
스페이스X는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그라임스카운티에 테라팹을 건설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테라팹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다. 앞서 테슬라는 지난 4월 텍사스 기가팩토리 북부 캠퍼스에 연구용 반도체 팹 착공에 들어갔다. 스페이스X는 이를 테라팹의 선행 연구시설로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테라팹이 현실화된다면 처음으로 대규모 AI 수요가 반도체 공급 능력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로 이어지는 사례가 된다”며 “AI 설비투자(CAPEX)의 범위가 반도체 구매에서 반도체 제조설비까지 넓어지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 최대 160조원 투입…AI칩 생산 전 과정 내재화
테라팹은 단순히 반도체 웨이퍼만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로직과 메모리, 첨단 패키징을 하나의 생산시설에 통합하는 구조다. 포토마스크 제작부터 웨이퍼 제조, 패키징과 테스트까지 반도체 생산 전 과정을 한 캠퍼스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 목표다. 연간 1테라와트(TW) 규모의 컴퓨팅 하드웨어 생산능력도 목표로 제시했다.
테라팹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머스크 계열사의 AI 사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스페이스X는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와 자율주행 차량에 사용할 엣지·추론용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X의 우주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고성능 반도체도 생산 대상이다.
시설 규모도 크다. 제조공간은 1억제곱피트(약 930만㎡) 이상으로 계획됐다. 단순 면적 기준 여의도 토지면적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스페이스X는 테슬라와 자사의 향후 반도체 수요가 1TW 이상의 컴퓨팅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단계 투자 규모는 약 168억달러다. 달러당 1350원을 적용하면 약 22조7000억원이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가 투자에 참여하며 해당 시설에서는 최소 30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장기 투자 규모는 더 크다. 텍사스주 회계감사관에 제출된 일자리·에너지·기술혁신(JETI) 관련 자료에는 테라팹을 최대 4단계로 구축하는 계획이 담겼다. 단계별 투자가 모두 진행될 경우 투자 규모는 최대 1190억달러로 제시됐다. 같은 환율을 적용하면 약 160조6500억원이다.
테라팹을 짓는 배경에는 향후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자리한다. 스페이스X는 테슬라와 자사의 향후 칩 수요가 현재 글로벌 공급량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공식 발표에서도 양사의 예상 수요가 1TW를 초과한다며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능력과 큰 격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테라팹을 기존 파운드리업체의 새로운 경쟁자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2~3년이 걸리는 만큼 테라팹이 본격 가동되기 전까지 필요한 반도체는 기존 공급망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삼성증권은 테라팹의 핵심 의미가 향후 반도체 수요가 얼마나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지와 현재 공급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테라팹이 계획대로 현실화돼도 스페이스X가 상당 부분의 컴퓨팅 하드웨어를 기존 외부 공급업체로부터 계속 조달할 계획인 만큼 기존 반도체 업체의 설비투자 확대도 동반될 수 있다고 봤다.
◆ 인텔 14A가 연결고리…국내 소부장에 새 수요처
국내 소부장 업체와 테라팹을 연결하는 고리는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 4월 테라팹 프로젝트에 스페이스X와 xAI, 테슬라와 함께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텔은 고성능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패키징하는 역량을 활용해 테라팹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테라팹은 초기 선단공정에 인텔의 14A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14A는 인텔이 외부 고객을 겨냥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선단공정이다. 인텔은 14A를 외부 고객용으로 처음부터 설계한 공정이라고 밝히고 고객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테라팹 양산라인이 아직 본격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만큼 모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를 수혜 대상으로 분류하기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인 단계별 투자 일정이나 장비 발주 계획도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대규모 장비 설치가 본격화되는 시점은 빨라도 2028년으로 예상했다.
다만 초기 연구개발(R&D)과 선단공정 개발에서는 기존 인텔 공급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인텔 공정에서 이미 검증된 장비와 소재,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공급업체를 도입하는 것보다 기술 이전과 초기 수율 확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삼성증권은 “단기적으로는 이미 인텔 공정에서 활용되고 있는 장비나 소재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공급업체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업체 가운데 ASML과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리서치, KLA 등이 인텔 전공정 밸류체인에 포함된다. 국내에서는 HPSP와 피에스케이, 파크시스템스를 주목할 업체로 제시했다.
HPSP는 고압수소어닐링(HPA) 장비가 연결고리다. 삼성증권은 현재 선단 파운드리와 다수의 후발 파운드리가 HPA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테라팹의 비메모리 양산라인에도 해당 장비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테라팹 연구용 팹이 지난 4월 착공된 점을 감안하면 HPSP가 파일럿 장비 주문을 이미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피에스케이는 기존 인텔 공급망과의 연결성이 강점으로 꼽혔다. 삼성증권은 피에스케이가 최대 파운드리업체를 제외한 주요 종합반도체기업(IDM)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텔의 자체 설비투자 확대에 테라팹 관련 수요까지 더해질 경우 2028년 실적에 추가 성장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파크시스템스는 원자현미경(AFM)을 중심으로 한 공정 제어 장비 수요 확대 가능성이 제시됐다. 삼성증권은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정밀 계측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신규 팹 건설 확대가 장비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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