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수민 인턴기자] AI 투자 경쟁이 '칩'에서 '금융'으로 번지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오픈AI 투자를 위해 15조원 넘는 회사채 발행에 나선 가운데 글로벌 AI 기업들은 회사채를 넘어 GPU와 장기 고객계약까지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금융을 활용하면 데이터센터와 GPU 투자를 더 오래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회사채 금리가 오르거나 GPU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AI 투자 위축으로 HBM·D램 주문이 감소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매출과 직결되는 AI 반도체 수요를 좌우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셈이다. 동시에 AI 기업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은 글로벌 신용시장의 금리와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사채만 349조원…AI 투자 '돈의 전쟁'
지난 21일(현지시각) 소프트뱅크는 오픈AI 투자금 마련을 위해 100억달러(13조5700억원)와 10억유로(1조5600억원) 규모의 선순위 무담보채 발행에 착수했다. 총 조달액은 약 15조1300억원이다.
이 가운데 100억달러는 오는 10월1일 예정된 오픈AI 추가 투자금에 활용된다.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는 새 채권에 'BB+'를 부여했다.
BB+는 투자등급인 BBB- 바로 아래의 최고 투기등급으로, 채무상환 능력은 있으나 경기·사업환경이 악화될 경우 부도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시장에서는 통상 ‘정크본드(Junk Bond)’로 분류된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만의 상황이 아니다.
지난 17일 하나증권이 발간한 'AI 회사채 시대, 늘어나는 장기 듀레이션 공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와 AI기업 20곳의 회사채 발행액은 지난해 1580억달러(214조4000억원)였다. 전년 대비 198.1% 늘어난 수치다. 올해 8월까지의 규모는 2570억달러(348조8000억원)로, 이미 지난해의 발행액을 넘어섰다.
AI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처럼 장기간 사용하는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일반적인 3~10년물뿐 아니라 20~30년 만기의 장기 회사채 발행도 늘리고 있다.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채권 가격 변동폭이 커져 투자자의 위험부담이 커진다.
하나증권은 올해 AI 관련 회사채가 만들어내는 금리위험을 미국 10년물 국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최대 3600억달러(488조5000억원)를 추가 발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 회사채 넘어 GPU까지 담보…'미래 AI 사용료' 당겨 쓴다
지난 18일 미래에셋증권이 발간한 '칩 파이낸싱: GPU, 투자 자산이 되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도 AI 설비투자가 급증하면서 잉여현금흐름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칩 파이낸싱(Chip Financing)'이다. GPU와 대형 고객과의 장기 사용계약을 특수목적회사(SPV)에 묶고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고객이 향후 지급할 컴퓨팅 사용료를 원리금 상환재원으로 삼는다. 미래에 받을 AI 사용료를 당겨서 당장 필요한 GPU를 사는 구조다.
미래에셋증권이 확인한 GPU 담보 금융은 18건이며, 금액이 공개된 17건의 약정 규모를 단순 합산하면 811억달러(110조1000억원)이다. 아직 브로드컴·앤트로픽·코어위브 등 일부 대형 거래에 집중돼 있지만 비슷한 금융 구조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브로드컴-앤트로픽 SPV 사례에서 투자금을 전액 자기자본으로 마련할 경우 약 13.9%의 수익률이 나와야 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여러 종류의 부채와 소량의 자기자본을 섞을 때는 전체 자금의 평균 조달비용을 약 6.4%까지 낮출 수 있다고 추산했다.
엔비디아에서는 지난 8월 브룩필드·골드만삭스·KKR 등 6개 금융사와 5000억달러(677조9000억)이상의 컴퓨트 금융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엔비디아 GPU는 필요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고객에게 금융기관의 자금과 연결해주어 데이터센터와 장비 구매를 지원한다.
고객은 외부자금으로 GPU와 데이터센터를 먼저 구축하고 향후 AI 서비스 매출로 금융비용을 갚는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직접 돈을 빌려주지 않고도 고객의 구매력을 키워 GPU 판매를 늘릴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칩 파이낸싱이다.
◆ HBM 수요도 '돈줄' 본다…韓 반도체 새 변수
AI 금융 확대가 당장은 국내 반도체 업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승성이 높다. 자금조달 여력이 커질수록 AI 사업자가 더 많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이에 필요한 GPU는 물론 HBM과 서버용 D램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엔비디아가 구상한 5000억달러 이상의 금융 플랫폼이 실제 집행될 경우 연간 5~6GW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속기·메모리·네트워크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연간 1000억~1200억달러(135조7000억~162조8000억원)의 반도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추산이다.
하지만 AI 투자의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금융시장 악화로 인한 영향도 커질 가능성도 커진다. AI 기업의 부채가 늘고 수익성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면 투자자는 신용 스프레드(Credit Spread)를 높일 수 있다. 신용 스프레드는 기업이 국채보다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금리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커질수록 확대된다. 여기에 신규 회사채와 차환 물량까지 증가하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져 데이터센터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금리가 올라 AI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기대하는 수익률보다 자금조달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면 사업자는 신규 프로젝트를 연기하거나 투자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이는 GPU 발주 감소를 거쳐 HBM·D램 주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GPU 담보금융도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GPU는 기술 노후화가 빠르고 경제적 수명이 약 5~6년으로 짧아 중고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 금융기관이 향후 회수 가능한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이 경우 AI 사업자의 GPU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줄면서 HBM·D램 주문도 둔화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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