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연 기자] 로또에 당첨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지난 10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주인공 공은태(이준혁 분)이 세후 약 13억원의 당첨금을 손에 쥔 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그런데 중개인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연봉이 얼마나 되세요?”
공은태는 약 7000만원이라고 답한다. 중개인은 매년 그만큼을 임대소득으로 얻으려면 30억원이 넘는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은태는 이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다.
'30억원짜리인 내가 13억원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결국 부동산 투자를 미루고 돌아선다.
◆ 13억, 서울에선 생각보다 작다
하루아침에 13억원을 받은 직장인이 가장 먼저 부동산을 떠올리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둘째 주(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6% 올랐다. 상승폭은 다소 둔화했지만 오름세는 84주째 이어졌다. 8월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도 전월 대비 0.97% 상승했다. 최근 강남·서초 등 일부 고가 지역에서는 조정이 나타나고 있지만 서울 전체로 보면 주택가격 상승 흐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가계가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강해졌다고 봤다. 고 원장은 “현재 주식과 주택시장이 자산시장의 ‘투톱’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13억원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만큼 압도적인 돈이 아니라는 데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6억739만원으로 16억원을 넘어섰다. 중위가격도 12억9167만원이었다. 13억원이면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겠지만 중위가격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평균가격에는 못 미치고, 가격 상위 지역으로 갈수록 선택지는 빠르게 줄어든다.
고 원장도 “13억원이면 서울에서도 아파트를 살 수는 있다”면서도 “강남이나 마용성 등 선호지역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사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30억 상가가 버는 돈, 정말 연봉 7000만원?
그렇다면 극중 중개인이 말한 ‘연봉 7000만원을 만들려면 30억원대 건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은 얼마나 현실적일까.
한국부동산원은 상업용부동산의 수익성을 소득수익률과 자본수익률로 나눠 집계한다. 소득수익률은 임대수입 등에서 운영경비를 제외한 순영업소득(NOI)이 부동산 자산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한국부동산원은 분기마다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통해 이를 발표하고 있다.
2026년 2분기 서울 중대형 상가의 분기 소득수익률은 0.60%였다. 같은 수준의 수익률이 1년간 이어진다고 단순 환산하면 연 2.40%다.
30억원짜리 상가에 이를 적용하면 연간 순영업소득은 약 7200만원이다.
30억원 × 2.40% = 7200만원
극중 공은태의 연봉 7000만원과 거의 비슷한 연간 현금흐름이다. 실제로 연간 7000만원의 순영업소득을 같은 수익률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동산의 가치를 역산하면 약 29억1700만원이다. 드라마 속 중개인이 말한 ‘30억원대 건물’이라는 계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로또 당첨금인 13억원을 같은 수익률의 상가에 모두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순영업소득은 약 3120만원이다.
13억원 × 2.40% = 3120만원
세금 등을 제외하고 연간 현금흐름 규모로만 단순 비교하면, 13억원이라는 거액도 상업용부동산에서 매년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으로 바꿔보면 연봉 700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취득세와 중개보수 등 초기 거래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13억원의 현금으로 매입할 수 있는 부동산 규모는 더 작아질 수 있다.
◆ 13억보다 다시 보인 ‘연봉 7000만원’
공은태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자신이 매년 벌어들이는 7000만원, 즉 근로소득의 가치였다.
통장에 한꺼번에 찍힌 13억원은 눈에 잘 보인다. 반면 매달 나눠 들어오는 월급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하지만 같은 수준의 현금흐름을 부동산으로 만들어내려면 수십억원의 자산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자산가격이 크게 오른 시대, 월급만으로 집을 사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매년 일정한 소득을 만들어내는 직장인의 능력 역시 생각보다 값비싼 자산일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가진 지식과 기술, 경험, 노동능력처럼 앞으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인적자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직장인의 연봉 역시 단순히 매달 지급되는 돈으로만 볼 수 없다. 그동안 쌓아온 교육과 경험, 업무 능력이라는 인적자본이 반복적으로 소득을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재밌는 점은 직업의 가치가 근로소득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직업이 생계를 위한 소득원인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성장과 성취감을 얻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을 통해 얻는 가치는 월급이나 금전적 가치로만 환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돈이 충분하더라도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직업관이나 인생관, 행복관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은 일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또 13억원은 삶의 선택지를 크게 넓혀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소득 창출 능력과 직업의 가치까지 모두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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