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유업계가 국제 정제유 가격 급등으로 큰 이익을 거두고 있는 데다 국내 가격과 수출물량 통제에 따른 손실도 정부가 보전하고 있어 사상 최대 수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손실보전 절차는 아직 첫 정산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업계 요구와 달리 국제 제품가격이 아닌 실제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하는 방식으로 보전 기준을 정하면서 기업별 원가 산정과 마진 수준을 둘러싼 셈법도 복잡해졌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면서 최고가격제 장기화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어 정유업계의 미정산 부담과 정부 재정부담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 "정유사 사상 최대 호황"이라는 대통령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중동 지역 긴장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에도 국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원유 수입처 다변화와 전략비축유 스와프제 등을 언급하면서 "원유와 국제 정제유가는 폭등 중이지만 국내 정제유는 최고가격제와 수출물량 통제로 무리 없이 안정적 가격과 공급물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정유사 상황을 두고는 국제 정제유 가격 급등에 따른 이익이 큰 데다 국내 가격과 수출물량 통제로 인한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사상 최대 수준의 호황"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 사상 최대 호황이지만 첫 정산도 아직
이 대통령이 X에서 언급했듯이 정유업계는 사상 최대 호황이다. 실제 정제마진은 높은 수준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복합정제마진을 배럴당 30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4분기 10달러의 세 배다.
다만 정제마진 상승이 곧바로 정유사의 실질 수익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원유 운송비와 보험료 등 조달 비용도 중동 정세에 따라 상승할 수 있는 데다 정부의 가격·수출 규제로 국제 제품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을 온전히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표상 정제마진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원유 도입비와 운임 등 원가도 함께 올라 실제 수익성이 지표만큼 높은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최고가격제가 시행 중이고 수출물량도 제한돼 있어 정제마진 상승에 따른 수익을 온전히 얻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3월13일 최고가격제를 도입하며 약속한 손실보전은 아직 첫 정산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유사들의 원가자료 제출기한도 당초 8월 말에서 9월 말로 한 달 연기됐다.
◆ 5조 손실 추산에도 보전액은 ‘미정’
지난 6월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누적 손실 규모는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정부가 최고가격제 6개월 운영을 전제로 마련한 목적예비비 4조2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의 계산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정유업계는 당초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시장가격과 실제 판매가격의 차이를 손실 산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정부는 실제 발생한 원가에 적정 수준의 마진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가 규정한 원가에는 원유와 석유제품 구입가격, 운송비·보험료 등을 포함한 원유도입비용과 감가상각비·인건비·연료비·국내 유통비 등 생산·판매비용, 그 밖의 관련 비용이 포함된다.
이견의 핵심에는 ‘적정마진’이 있다. 정부의 손실보전 규정에는 원가에 적정 수준의 마진을 고려하도록 돼 있지만 어느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볼지 구체적인 기준이나 산정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다. 기업마다 원유 조달가격과 운송비, 생산비용도 달라 실제 보전액을 계산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원가 중심 방식이 기업의 비용 절감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유를 싸게 확보해 원가를 낮춘 정유사는 보전금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높은 가격에 원유를 조달한 기업은 인정 원가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 수출 기회손실은 별개…유가 급등까지
수출 제한도 변수다. 정부는 정유사가 전년 동월의 90% 이상을 국내에 우선 반출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는 국내 공급 의무가 커질수록 해외에서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기회가 줄어든다.
한국의 경유 수출단가는 지난 2월 배럴당 90.9달러에서 7월 138.6달러로 52.5% 상승했다. 하지만 최고가격제에 따른 국내 판매 손실과 달리 수출 제한으로 발생한 기회손실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보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유가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11일 브렌트유는 104.61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0.05달러로 마감했다. 이후 중동 공급 불안이 확대되면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첫 손실보전 기준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가가 다시 급등하면서 최고가격제 장기화 가능성도 커졌다. 제도가 길어질수록 정유사는 보전금을 받기 전까지 비용을 먼저 떠안아야 하고 정부의 재정부담 역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업계 관계자는 "첫 정산 결과가 나와야 실제 보전 수준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전 시점이 계속 늦어지면 정유사가 먼저 부담한 비용을 회수하는 시점도 늦어지는 만큼 현금 유동성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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