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수민 인턴기자]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이사의 말 한마디에 전세계 증시가 일제히 상승랠리를 펼치고 있다.
3일(현지시간)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로이터통신 주최 행사에서 “물가상승률 2% 목표 달성을 향해 지속적인 진전이 있다면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지지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현 수준의 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자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 다우지수는 624.16포인트(1.18%) 오른 5만 3686.11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도 81.11포인트(1.06%) 오른 7747.71을 기록했다. 나스닥도 1.40% 오른 2만 6584.06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4일(한국시간) 오후 2시 현재 코스피는 1.89%, 코스닥은 3.15%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월러 이사가 어떤 발언을 했기에 시장은 이렇게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물가 둔화 신호가 보인다…월러가 주목한 최근 흐름
“Recent data suggest we are finally seeing some signs of disinflation.”
월러는 연설 초반부터 자신의 판단에 'as of today', 즉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판단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어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2% 목표를 여전히 웃돌고 있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미국 내에서 물가가 서서히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월러가 주목한 것은 2%라는 절대적 수치보다는 최근 물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느냐였다. PCE(개인소비지출)란 미국인이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는 지표로, 연준에서는 2%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하고 계산한 근원PCE(Core PCE)를 보면, 12개월 동안 3.3% 올랐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의 관세와 이란전쟁으로 급격하게 상승한 여파로 봐야 한다.
하지만 3개월 단위로 나눠서 보면 수치가 달라진다. 올해 연초 3개월(1월~4월)의 근원PCE를 연율화하면 3.87%가 나온다. 최근 3개월(4~7월) 근원PCE를 연율화 했을 때는 3.05%가 나온다. 미국의 물가지수가 조금씩 안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 물가 둔화 좀 더 지켜보자
월러는 최근 물가 흐름을 설명하면서 “Give disinflation a chanc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Disinflation’은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아니라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월러는 3개월 단위의 연율화된 근원PCE가 서서히 낮아지는 것을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 연준이 7월에 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해석한 셈이다. 따라서 이번 9월에 연준이 급하게 금리 인상 카드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수 있으며, 최근 나타난 물가 둔화 흐름이 실제 추세인지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물가 둔화가 8월 지표에서도 이어지면 9월 FOMC에서 금리를 한 차례 더 동결할 수 있으며 반대로 물가 동향이 일시적이고 다시 오르면 추가 인상도 가능하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윌러는 “물가 변동이 2%로 향해간다면 동결로 기울 수도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다시 주도권을 잡는다면 금리를 다시 올릴 것이다”라는 발언을 같이 했다.
◆ 금리 방향보다 ‘스트라이크존’ 공개
“Reaction function”
월러의 사고방식은 연설 후반에서 언급된 '반응함수(reaction function)'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반응함수란 외부 작용에 따라서 변화하는 양상을 기술하는 함수다. 경제학계에서는 경제지표가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중앙은행이 정책을 어떻게 조정할 지를 의미한다. 향후 추가로 발표될 지표에 따라서 정책을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셈이다.
월러는 이어서 자신의 통화정책 판단을 야구 스트라이크존에도 비유했다. 투수와 타자는 다음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변화구인지 미리 알 필요는 없지만 심판이 스트라이크존을 어떻게 설정하고 판정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월러가 이번 연설에서 시장에 보여준 것은 금리의 최종 방향보다 물가 둔화가 이어지면 동결하고, 다시 가속하면 인상을 검토한다는 판단 기준을 공개한 것이다.
◆윌러가 누구이기에 시장이 움직였나
월러의 발언에 시장이 즉각 반응한 것은 그가 단순한 연준의 이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월러는 실제 기준금리 결정에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연준 이사다.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일부가 순환제로 투표권을 갖는 것과 달리 연준 이사는 모든 FOMC에서 표를 던진다. 또한, 올해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연준 내에서는 통화정책의 전문가로 통한다.
월러는 2020년 12월 연준 이사로 취임했으며 임기는 2030년 1월까지다. 연준 이사가 되기 전에는 2009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St.Louis)에서 수석부총재 겸 리서치 디렉터를 지냈다.
노트르담대(University of Notre Dame)와 켄터키대(University of Kentucky) 등에서는 거시경제학과 통화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사실상 행정부 관료보다는 통화정책을 오랫동안 연구한 경제학자에 가까운 이력이다.
시장에서는 월러를 매파(통화정책 강경파) 혹은 비둘기파(통화정책 온건파)라고 고정해서 보지 않는다. 월러는 2021년 인플레이션이 극심해 질 당시에 다른 연준 인사보다 먼저 긴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후 노동시장과 물가의 흐름이 바뀌자 이때는 금리 인하와 동결을 주장했다. 정책 방향보다는 경제 데이터를 우선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번 발언 역시 이런 월러의 성향을 보여준다. 월러는 지난 3일 연설에서 9월 금리 동결을 확정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동결과 인상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다.
월러는 최근 케빈 워시 연준 의장과 정방대의 스텐스를 취하고 있는 인물이다. 워시는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거울의 방(hall of mirrors)’ 문제를 언급했다. 연준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할 경우, 시장이 연준의 발언을 따라 움직이고, 연준은 다시 시장 가격을 참고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워시는 향후 정책의 방향에 대한 발언을 줄이는 ‘조용한 연준(a quieter Fed)’을 강조했다.
반면 월러는 3일(현지시간) 연설에서 어떤 경제지표가 나오면 연준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금리의 최종적인 결론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시장 변동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준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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