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수민 인턴기자]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씨티 등 월가의 대형 금융사가 로펌에 AI 활용으로 줄어든 비용을 수임료에 반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AI가 변호사 업무의 일부를 대체하고 있다는 이유다.
2일(현지시간) 미국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에 따르면 뉴욕에 위치한 씨티뱅크(CITI)에서 외부 로펌을 선정할 때 AI 활용으로 비용을 얼마나 절감했는지 직접적으로 수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금융회사 모건스탠리(MorganStanley)도 연말까지 법률 업무 수임료를 절감할 방안으로 AI를 검토하고 있으며 새로운 수임료 방식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법률서비스는 ‘시간당 과금제(Billable hour)’를 기준으로 수임료를 받아왔다. 시간당 과금제란 변호사가 일한 시간에 변호사 개인의 단가를 곱하는 정산 방식을 말한다.
문제는 AI가 이 계산법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소장 작성, 판례 분석 등 시간이 오래 걸리던 일을 AI가 더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임료 체계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고객사에서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 6분 단위로 기록하는 변호사의 시간
시간당 과금제는 단순하다. 변호사가 특정 사건에 쓴 시간에 시간당 단가를 곱한다. 계약서를 몇 시간 검토했는지, 판례 검색에 얼마나 걸렸는지, 고객과 통화한 시간은 얼마인지 사건별로 나눠서 입력한다.
미국 로펌에서는 0.1시간, 즉 6분 단위로 변호사의 하루를 기록한다. 예를 들어 계약서 검토에 1시간 12분을 썼다면 1.2시간으로 기록하는 식이다. 국내 대형 로펌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쓰인다.
박민철 김앤장 소속 이혼 전문 변호사는 지난 4월 ‘유 퀴즈 온 더 블록’ 에서 자신의 시간당 단가가 약 130만원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0.1시간으로 나눈다면 6분에 약 13만원이 책정되는 셈이다. 다만 이는 박민철 변호사 개인의 단가이고, 경력, 분야, 고객사와의 계약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 국내외 로펌의 AI 도입 현황
해외 법조계에서는 AI 도입이 굉장히 활발하다. 영미계 법무법인 A&O는 이미 2022년부터 법률 AI 플랫폼 ‘하비(Harvey)’을 도입했다. 또다른 글로벌 법무법인 CMS, Latham & Watkins도 2025년에 도입을 시작했다. 올해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 조사에 따르면 로펌에서 AI 실제 사용률은 2024년 14%에서 2025년에 28%, 2026년 41%까지 확대됐다. 2년 만에 AI 사용률이 약 세 배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AI 도입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 7월 하비를 전 구성원에게 도입했다. 법무법인 율촌도 자체 법률 AI '아이율(AI:Yul)'을 사용하고 있다. 김앤장과 광장, 세종 등 주요 로펌도 자체 AI 시스템이나 외부 AI를 법률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기업 내부 법무팀 태도도 바뀌고 있다. 간단한 법률 질문이나 자료 검색은 AI로 직접 처리하고 판단이 필요한 사건만 로펌에 맡기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외처럼 국내의 대형 금융사가 로펌에 직접적으로 수임료 인하 압박을 한 사례는 없었다.
◆ AI가 줄인 시간…누가 이익 가져가나
AI가 등장하면서 시간당 과금의 문제가 뚜렷해지고 있다. AI를 업무에 사용한 시간을 변호사가 일한 시간으로 볼 것인지, AI 자체의 사용시간으로 볼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변호사가 소장 작성과 판례 분석을 하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가정했을 때 AI 활용으로 3시간만에 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이때 고객에게 10시간으로 청구할지 3시간으로 청구할 지 기준이 모호하다.
고객 입장에서는 3시간만 일하고 과거처럼 10시간의 비용을 받는다면 로펌의 수임료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로펌 입장에서는 AI에 비용을 투자해서 업무효율을 높였는데 오히려 매출이 줄어든 상황이다.
남은 시간을 다른 업무에 쓰는 경우도 있다. AI가 검색과 정리를 대신해준 만큼 변호사가 소송 전략이나 협상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이 경우 전체 업무 시간은 크게 줄지 않아도 고객이 받는 서비스의 질은 좋아질 수 있다.
올해 톰슨로이터 조사에서 기업 법무담당자의 71%는 AI 활용이 늘어나면 외부 로펌의 가격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반면 AI 때문에 실제 수임료 체계를 바꿨다고 답한 로펌은 28%에 그쳤다.
◆ 시간당 과금제 대신 성과제도 쉽지 않아
결국 AI가 줄인 비용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AI의 효율을 단순히 '몇 시간을 줄였는가'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AI 도입 전후 전체 업무시간과 인건비, AI 사용료, 검토시간, 오류 검토, 재작업 횟수까지 함께 봐야 한다.
시간당 과금의 대안으로 ‘정액제’나 ‘성과 중심 수임료’도 거론된다. 정액제는 사건 한 건이나 특정 업무에 가격을 미리 정해두는 방식이다. 계약서 검토 한 건에 얼마, 기업 법률자문 한 달에 얼마를 받는 식이다.
성과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방식도 있다. 다만 모든 사건에서 '성과' 또는 ‘승소’ 같은 정해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소송 결과는 변호사 실력 외에도 증거와 사실관계, 상대방 대응, 재판부 판단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일을 잘했어도 패소할 수 있고, 사건 자체가 유리하면 큰 노력 없이도 이길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꼭 승소가 최고의 결과인 것도 아니다. 3년간 소송을 벌여 100억원을 받는 것보다 한 달 만에 80억원에 합의하는 편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또한, M&A나 계약 검토처럼 애초에 승패가 없는 법률업무도 많다.
전체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주세요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