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연 기자] 한국이 제조 현장의 로봇 활용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로봇산업 종합 경쟁력은 중국에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로봇 도입이 빠르게 이뤄졌지만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 생산 역량 등 산업 가치사슬 전반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글로벌 로봇산업의 구조적 전환과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로봇밀도는 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제조용 로봇 설치량도 세계 4위권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 비중은 세계 시장의 5.6%였다. 중국이 54.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일본 8.2%, 미국 6.3%에 이어 한국이 네번째로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독일은 5.0%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높은 로봇 활용도가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전문가 델파이 조사에서 한국의 제조용 로봇산업 종합 경쟁력은 100점 만점에 72.9점으로 주요 6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일본이 95.5점으로 가장 높았고 독일 88.4점, 미국 80.6점, 스위스 79.5점 순이었다. 중국도 79.4점으로 한국을 6.5점 앞섰다.
분야별로 보면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의 연구개발·설계 경쟁력은 70점으로 일본(96점)과 26점 차이가 났다. 생산 분야도 한국은 72점에 그쳐 일본 99.4점, 독일 90점, 중국 79점에 뒤졌다.
특히 취약한 분야는 핵심부품을 조달하는 능력이다. 한국의 조달 경쟁력은 64점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았다. 일본은 98.8점, 독일은 89점이었다. 중국도 76점으로 한국보다 12점 높았다.
감속기와 서보모터, 센서, 제어기 등 주요 로봇 핵심부품의 국산화율 역시 44% 수준에 머문다. 완제품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연구원은 이를 한국 로봇산업의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약점으로 평가했다.
산업 생태계의 영세성도 발목을 잡고 있다. 2024년 로봇산업 실태조사 기준 국내 로봇사업체는 2509개사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은 97.9%였다. 로봇 관련 매출이 100억원을 넘는 기업은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기업 수는 적지 않지만 대규모 연구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을 주도할 수 있는 기업층은 얇은 셈이다.
반면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기술 내재화와 양산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핵심부품부터 완제품과 응용시장, 실증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종합 경쟁력에서도 이미 한국을 앞섰다.
글로벌 로봇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키운다. 2024년 글로벌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량은 54만2076대로 집계됐다. 산업연구원은 2028년에는 약 70만8000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서비스용 로봇은 2024년 19만9090대가 판매됐으며 2028년까지 연평균 26.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산업의 경쟁 방식은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하드웨어의 정밀도와 생산 능력이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데이터,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피지컬 AI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통합 시스템 역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로봇산업이 '활용 강국'을 넘어 '산업 강국'으로 전환하려면 양적 보급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핵심부품·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산업 현장 데이터 표준화·축적 ▲수요 연계형 실증·보급 ▲전문기업 육성 ▲글로벌 공급망 협력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활용 기반을 국내 기술과 기업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핵심부품과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로봇시장 확대의 수혜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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