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항공사 출범이 연내 예정된 가운데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0.58%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양대 국적항공사 통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산은의 투자 목적도 달성 국면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호반그룹 측의 지분율 격차가 불과 0.41%포인트(p)에 그치고 있어서다. 산은으로서는 국책은행으로서 투자금을 적정하게 회수해야 하는 동시에 지분 처분이 한진칼 최대주주 구도에 미칠 파급효과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칼의 주요 주주는 조원태 회장 측 20.56%, 호반그룹 측 20.15%, 산업은행 10.58% 등으로 구성돼 있다. 조 회장 측과 호반그룹 측의 격차는 0.41%p에 불과한 반면 산은이 보유한 지분은 이를 크게 웃돈다. 산은이 향후 지분 전량이나 상당 부분을 특정 투자자에게 넘길 경우 현재 최대주주 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규모다.
산은의 한진칼 투자는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산은은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항공산업 구조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5000억원을 투입해 현재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양대 국적항공사의 기업결합 절차가 마무리됐고 오는 12월에는 통합 항공사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조직과 인력, 시스템 등을 하나로 묶는 합병후통합(PMI) 과정이 남아 있어 구조개편이 완전히 종료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산은의 투자 목적 역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금 회수 여건도 과거보다 좋아졌다. 한진칼 주가가 산은의 취득가를 크게 웃돌면서 현재 보유 지분에서는 상당한 평가이익이 발생한 상태다. 산은으로서는 투자 원금을 웃도는 자금 회수가 가능한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일반적인 투자자처럼 가격만을 기준으로 매각 상대방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유 지분 10.58%가 한진칼의 최대주주 구도를 좌우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투자 회수와 지배구조 안정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은이 지금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 배경도 향후 매각 판단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2020년 당시 조 회장은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국내 사모펀드(PEF) KCGI와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결성한 '3자 주주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은이 50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한진칼의 주요 주주로 등장했다.
산은의 투자 목적은 특정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가 아닌 항공산업 구조개편이었다. 산은 역시 당시 특정 경영진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산은이 주요 주주로 등장하면서 조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 여력이 커졌고, 이후 3자 주주연합이 해체되면서 한진칼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도 사실상 일단락됐다. KCGI 역시 당시 산은의 투자가 결과적으로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게 된다며 반발했다.
한동안 안정됐던 지분구도는 2022년 호반그룹이 등장하면서 다시 팽팽해졌다. 호반그룹은 조 회장 측과 맞섰던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며 2대주주로 올라선 뒤 꾸준히 지분을 확대했다. 올 들어 보유 지분율을 20.15%까지 끌어올리면서 조 회장 측과의 격차도 0.41%p까지 좁혔다. 공시상 지분 보유 목적은 단순투자지만 최근까지 지분을 추가 매입하며 최대주주 측과 사실상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확보했다.
산은이 아직 한진칼 지분 매각을 공식화하지 않은 만큼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난 원매자는 없다. 호반그룹 역시 산은 지분에 대한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는 아니다. 시장에서는 호반그룹이 최근까지 한진칼 지분을 확대해온 만큼 산은의 지분 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잠재적인 인수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처분 방식도 관건이다. 산은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은 700만주를 넘어 장내에서 단기간에 대규모로 처분할 경우 주가와 수급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산은이 지분을 처분할 경우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등이 현실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블록딜은 사전에 매수자를 정해 대규모 지분을 거래하는 방식인 만큼 산은 입장에서는 가격뿐 아니라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지분을 넘길지도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산은의 선택지는 어느 쪽이든 부담을 안고 있다. 보유 지분의 상당 부분이 호반그룹 측으로 넘어가면 조 회장 측과 호반그룹 측의 지분율이 역전될 수 있다. 특히 2020년 산은의 투자가 당시 경영권 분쟁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던 만큼 산은의 엑시트가 6년 만에 다시 한진칼 최대주주 구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조 회장 측이나 우호 투자자에게 지분이 넘어가면 기존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이 경우 국책은행의 지분 처분이 특정 주주의 경영권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산은으로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원매자를 선택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일반적인 엑시트와 달리 거래 이후 한진칼의 지배구조와 경영 안정성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지배구조 전문가도 산은의 출구전략에서 투자금 회수뿐 아니라 2020년 투자 당시의 배경과 경영 안정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당시 산은의 투자가 경영권 분쟁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 만큼 이를 떼어놓고 매각 상대방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김남은 아주기업경영연구소 본부장은 "한진칼은 약 2년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산업은행이 결과적으로 조원태 회장 측에 힘을 실으면서 경영권 분쟁이 종식됐다"며 "현재 산업은행의 출구전략은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경영의 안정성이다. 새로운 주주 측에서 제기하는 쟁점이 기존 이사회의 노력으로 해소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한다”며 "산업은행이 당시 백기사 성격으로 지분을 투자했었던 만큼 이러한 배경을 배제한 채 다른 주주 측에 유리한 거래를 통해 출구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자본시장 관점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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