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웅 기자]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이 열린 17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은 전날 내린 비로, 한층 쌀쌀해진 공기로 겨울에 접어들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날 불법승계 및 회계부정 1심 결심공판으로 삼성일가가 참석하지 않자 선영 분위기는 사뭇 무겁게 가라앉은 듯했다.  

오전 8시 도착한 용인 이병철 창업회장 선영은 오전부터 몇몇 취재진이 도착해 삼성 일가의 방문을 기다렸다. 

이 창업회장 기일은 19일이다. 그러나 주말인 관계로 추도식 일정이 이틀 앞당겨졌다. 취재진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지만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삼성글로벌리서치 고문 등 삼성 오너 일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이재용 회장이 당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1심 결심공판으로 법원에 출석한 영향으로 보인다. 검찰 구형도 예상보다 컸다. 삼성 일가 분위기가 창업회장 기일을 위해 용인까지 발걸음 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검찰은 이날 오전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5억원,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결심공판은 형사사건 재판선고 전 마지막 절차다. 장손인 이 회장이 참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도식에 무리해서 참석하기 보다는 이 회장의 재판 이후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 선영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인지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 사장단도 이날 선영을 방문하는 대신 각자 업무에 집중했다. 오전 가족들이 찾지 않은 이병철 창업회장 선영에는 눈까지 쏟아지면서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만 오후 들어 CJ, 한솔, 신세계 등 범(凡)삼성 계열 그룹 사장단이 시간차를 두고 추도식에 오면서 삼성 일가의 빈자리를 채웠다. CJ그룹이 가장 먼저 선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날 오후 1시20분께 CJ그룹 소속 차량 25대가 잇달아 선영을 찾았다.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 등 사장단은 20여분간 선영에 머물다 오후 2시 6분께 이동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등 가족과 함께 18일이나 19일에 별로도 선영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솔, 신세계그룹 사장단은 당일 각각 오후 3시, 4시에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을 찾아 이 창업회장의 뜻을 기렸다. 

이재현 회장은 예년처럼 추도식과 별도로 호암이 생전 거주했던 서울 장충동 고택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19일 저녁 열린다. 범삼성 계열 그룹 일가는 과거 호암 추도식을 공동으로 열었지만, 형제인 CJ 이맹희 전 회장과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상속 분쟁을 벌인 2012년부터는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별도로 행사를 해 왔다.

한편 이병철 창업회장은 1938년 청과물·건어물 수출업으로 창업한 '삼성상회'를 세웠고, 이는 삼성물산의 뿌리가 됐다. 그가 1953년 설탕 사업으로 시작한 제일제당은 CJ그룹의 모태다.

추도식은 이병철 창업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기일(11월 19일)에 맞춰 열린다. 사업보국은 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더 나아가 인류에 공헌하고 봉사한다는 의미로 호암의 첫 번째 경영철학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