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 오브 뎀' 보다는 '온리 원'
농금원의 '농식품모태펀드', 한국벤처투자 이관 가능성···역행하는 정책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6일 08시 3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농금원)


[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동남아 지역에 사는 현지인들과 수 년 전부터 연락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영화·드라마 등 'K-콘텐츠', 그리고 떡볶이·막걸리 등 'K-푸드'. 왜인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K-푸드' 이야기를 유달리 자주 한다. 지난해 한국 농식품 수출액이 90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하니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해외 인지도와 달리,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농식품 분야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대부분의 농식품 기업은 아직도 '대출'로만 자금을 조달한다. 게다가 대부자는 주로 농협 등 정책기관이다.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일단 농식품 기업은 지방에 소재한 소규모 법인이 많아 발굴부터 어렵다.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식품모태펀드는 오랜 기간 농식품 분야 생태계에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출'이 아닌 '투자'를 주력으로 지원하는 유일한 전문기관이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은 농식품모태펀드 출자금과 민간재원을 섞어 자펀드를 결성해 투자에 나선다. 특히 연구 자금이 많이 필요한 기술 중심의 초기 단계 농식품 벤처기업 등이 큰 수혜를 보고 있다.


농식품모태펀드는 지난 201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산하기관인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이 운용하고 있다. 다른 업종과 사뭇 다른 지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특허청 등 다른 부처에서 출자한 모펀드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가 운용 중이다. 농식품모태펀드 설립 단계부터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업종의 중요성·특수성 등을 고려해 관련 법령이 별도로 제정되며 이같은 구조로 설정됐다.


아무도 안 가던 길이다 보니, 농금원도 농식품모태펀드 운용 초창기에는 상당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농금원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농식품모태펀드를 묵묵히 운용하며 관련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왔다. 현재 누적 운용자산(AUM)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조7635억원에 육박한다.


농금원은 오랜 기간 위탁운용사(GP)·출자자(LP)는 물론 농식품 벤처기업들과 소통하며 이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갔다. 지난해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20회가 넘는 투자설명회(IR)를 개최했고 각종 지원 사업도 병행했다. 특히 농금원은 수년 전부터 서울 외 지역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상북도·전라북도 등 지자체와 협업해 농식품 펀드도 결성했다.


농금원의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GP인 벤처캐피탈들은 고수익을 냈고 이는 곧 농식품모태펀드 출자금으로 재사용 됐다.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프리미엄 식음료 업체 '흥국에프엔비', 전통주 제조업체 '보해양조' 등이 도움을 받아 사세를 확장했다. 또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스마트팜 기업인 '우듬지팜'도 자펀드 투자를 받아 성장했다.


문제는 농식품모태펀드 운용 기관이 올해가 지나면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농식품모태펀드의 한국벤처투자 이관을 두고 재논의를 하고 있다. 기재부는 모펀드 운용에 중복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관을 찬성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해 반대하고 있다. 두 기관은 일단 이 논의를 올해 말까지 미뤄두기로 합의했다.


양측의 의견은 모두 일리있다. 다만 일부 투자업계의 말을 들어보면 농금원이 그대로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농식품 분야 업종 특성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극초기와 후기 단계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많은 지원을 이어가야 투자성과를 낼 수 있는 데, 한국벤처투자로 넘어가면 그렇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벤처투자의 역량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한국벤처투자는 이미 12곳 정부부처에서 출자를 받아 모태펀드를 결성해 운용하고 있다. 농식품모태펀드를 품는다고 해도 곧 13곳 중 1곳 부서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반면 농금원은 현재 농식품모태펀드만 보유하고 있어 이를 공들여 키우고 있다.


게다가 한국벤처투자 지분 전량은 중기부 산하 정책금융기관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들고 있다. 때문에 농업계는 한국벤처투자가 결국 중기부 주력 분야인 과학기술 등에 집중할 수 밖에 없으며, 자연히 농식품모태펀드에 배분되는 자원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농식품 분야는 현재 영화·드라마와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량안보 문제 등도 얽히며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지금은 효율보다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식품모태펀드를 '온리 원'이 아닌 '원 오브 뎀'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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