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독특한 쓰임새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여타 공익재단들과 같이 그룹 주력계열사 지분 보유를 통해 총수일가의 지배력 구축에 일조한 데 더해 한발 더 나아가 그룹사에 일감까지 제공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몽구재단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사진)이 2007년 사재를 출연해 세운 공익법인이다. 미래혁신 플랫폼사업과 관련된 인재육성과 사회복지, 문화예술 지원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설립 배경은 정 명예회장이 과거 1000억원 가량의 비자금 조성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등의 배임 혐의를 받은 데 따른 속죄 차원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이후 8년간 보유했던 8500억원 규모의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지분을 정몽구재단에 출연하는 등 사회공헌에 힘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몽구재단이 공익과 함께 정의선 회장 등 그룹 특수관계인들의 사익에도 상당부분 기여했다는 점이다.
우선 정몽구재단은 정 회장의 지배력 유지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추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핵심 계열사가 될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보유 중이다. 이 재단은 공익사업 진행을 위해 일부 주식을 매도하기도 했지만 현재 현대글로비스 지분 4.88%를 보유 중이다. 이에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0%만 보유했음에도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 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통상 주주총회 출석주식 수는 유통주식 대비 7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정 회장과 정몽구재단, 현대차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총 29.3%)정도면 결코 지배력이 약하다고만 볼 순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몽구재단은 그룹사의 먹거리에도 일부 관여해 온 것으로도 나타났다. 유휴 현금자산을 현대차증권의 투자일임상품(랩어카운트) 등에 투자하는 식으로 계열사 실적도 챙겨준 까닭이다. 작년만 봐도 정몽구재단은 현대차증권에 총 4623억원의 현금을 맡겼다. 항목별로 확정금리형 상품(RP)에 215억원, 투자일임은 4409억원이다. 이 같은 현금은 현대차증권이 투자일임업의 외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증권사가 작년 말 인식한 일임계약 자산총액은 1조7786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정몽구재단을 비롯한 그룹 특수관계인이 맡긴 금액만 68.8%(1조2241억원)에 달했다.
재계에선 이에 정몽구재단이 내부거래 시비를 최소화 한 가운데 계열사와 윈-윈 했단 평가를 내리고 있다. 투자일임사업은 대체로 등 저위험·저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든 수익률이 대동소이한 만큼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있는 셈이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투자일임사업을 벌이는 회사들 절대다수가 채권이나 기업어음(CP) 등 사실상 리스크가 없는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를 벌인다"며 "몇몇 금융사가 특출나게 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겸사겸사 그룹사를 활용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과 달리 공익사업 비중이 하락한 점은 옥에티로 꼽히기도 했다. 정몽구재단이 지난해 배당 및 금융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은 350억원, 공익활동에 쓴 돈(목적비용)은 205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전년과 비교해 목적사업비가 6.5% 늘었지만 수익 확대에 따라 목적사업비중은 2021년 76.3%에서 지난해 58.6%로 17.7%포인트 하락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공익활동비용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사업수익이 커지고 있는 만큼 목적사업비 지출액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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