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 스토리]
여천NCC, 12년만에 신용등급 강등…공모채 '난항'
작년 폭발사고 이후 조달 강행 '낙인'…신용도 하락에 자금조달 여건 악화
이 기사는 2023년 05월 10일 17시 5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천NCC 에틸렌2공장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합작법인인 여천NCC가 12년 만에 신용등급 강등에 처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지속되면서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지면서다. 지난해 초 여수공장 폭발 사고 여파로 공모채 전량 미매각에 처했던 여천NCC는 1년 넘게 공모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번 신용도 하락으로 크레딧 리스크가 한층 부각되면서 당분간 공모채 조달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연이은 적자에 신용등급 강등…한기평도 상반기 내 하향 조정 나설 듯


10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는 전날 여천NCC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0(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2011년 A+로 신용등급이 올라선 여천NCC로서는 12년 만에 처음 겪는 등급 강등이다. 현재 한국기업평가는 여천NCC의 신용등급을 A+(부정적)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한국기업평가도 여천NCC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부여한 시점이 지난해 6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기평가 기간 내 등급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천NCC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기초원료 에틸렌 생산능력이 연 228만5000t에 달해 LG화학(330만t), 롯데케미칼(233만t)에 이은 국내 3위 수준이다. 전체 매출에서 한화솔루션을 비롯해 DL케미칼, 폴리미래 등 주주사·관계사 매출 비중이 절반을 웃돌아 사업 안정성까지 갖췄다. 다만 여타 종합화학업체들이 합성수지 등 다양한 다운스트림 제품을 보유한 것과 달리, 여천NCC는 기초유분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설립 배경 자체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안정적인 기초유분 확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업황 다운사이클에 직면하면서 기초유분 의존도가 여천NCC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은 반면,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수요는 크게 위축돼 주력 제품 마진이 급감한 것이다.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에틸렌 스프레드는 t당 200달러 안팎이었다. 운송비 등을 차감한 손익분기점(BEP)이 t당 200~250달러 수준으로 알려진 것을 고려하면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진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천NCC는 지난 2021년 4분기(-626억원)를 시작으로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상태다.


지난 수년간 투자와 배당 부담이 지속되면서 재무안정성도 크게 낮아졌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총 9895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데다가 당기순이익 대부분을 배당하면서 이 기간 잉여현금흐름(FCF)은 매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배당도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현금창출력 자체가 약화되면서 FCF 적자 기조는 지속됐다. 2018년 말 4463억원 수준이었던 총차입금도 지난해 말 1조8528억원 규모로 불어나면서 ▲부채비율(73.9%→200.1%) ▲차입금의존도(21.3%→55.4%) 등 주요 재무지표도 악화됐다.


원종현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석유화학산업은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유가상승, 공급부담, 수요둔화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특히 여천NCC는 경기에 민감한 기초유분 제품 비중이 높아 부정적인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을 고려하면 전방 수요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가 공급 측면에서도 국내외 설비증설이 올해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업황이 밝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인명사고 이후 시장 조달 강행 '낙인'…주주사 지원 여부도 불투명


여천NCC는 그간 우량등급에 미치지 못하는 A+의 신용등급으로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공모시장을 찾아 자금을 조달했다. 국내 상위권의 생산능력과 안정적인 판매구조를 토대로 연간 5000억원 안팎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창출력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여수공장에서의 폭발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직후에도 공모 수요예측을 강행하면서 2000억원 모집액 전액이 미매각에 처한 바 있다.


총액인수 조건으로 KB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 등 대표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당시 미매각 물량을 떠안았지만, 발행액은 1200억원으로 줄었다. 여천NCC가 3년물 1200억원, 5년물 800억원으로 나눠 발행을 계획했지만 수요예측 이후 5년물을 전액 포기하면서다. 통상 총액인수 조건 하에서는 미매각 규모와 무관하게 주관사들이 발행액을 모두 인수하는 관행을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 폭발사고 이후 증권사들이 수요예측 철회를 제안했지만 여천NCC가 무리하게 강행한 책임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시장에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여천NCC는 이후 1년 넘게 공모시장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실적 악화까지 겹치면서 공모 조달은 더욱 어렵게 됐다. 지난해 8월에는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으로 700억원을 조달했고, 올해 3월에는 2700억원 규모 만기가 돌아왔지만 은행 대출 등으로 차환에 나섰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가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말 기준 1000억원이 채 되지 않아 현금 상환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천NCC는 오는 9월 6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가 또 한 차례 돌아오지만 이 또한 회사채 차환이나 현금 상환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 등이 가능한 선택지로 꼽힌다. 다만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해 조달비용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 주주사의 지원 의지도 불투명하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지분 분할 가능성이 지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폭발사고 이후 주주사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천NCC의 실적 악화가 다소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데다가 재무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로서도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지분율대로 쪼개지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방향이 좀 더 현실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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