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여의도 증권맨들 속내 들어보니

[딜사이트 공도윤 기자] 15일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장 화제가 된 보고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무산 가능성을 제기한 한화투자증권의 보고서였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삼성물산이 주주총회에서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삼성 측이 향후 소송 패소 등에 따른 잠재적 비용 부담을 고려해 합병을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화증권 측은 “삼성그룹 측의 삼성물산 우호지분이 19.8%인데 비해, 엘리엇(7.1%) 측에 우호적일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은 26.7%나 있다”며 “10.2%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 역시 어떤 태도를 취할지 현재로서는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간의 표 대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펀드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증권업계는 이해관계자가 서로 얽히고 섥혀 분석 기업의 부정적 내용을 담거나 ‘매도’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발표 후 작성된 보고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지배구조개선 최대수혜주로 주주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는 내용으로 일관되게 ‘매수’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한국투자증권도 지난 10일 삼성물산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며 ‘외국인투자자의 비율을 고려할 때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은 담고 있었으나 주가 의견은 ‘비중확대’였다.
한 애널리스트는 “잊을만하면 언론에서 기업에 우호적인 보고서만 나올 뿐 ‘매도’ 보고서는 찾을 수 없다며 비난하지만, 실제 매수 보고서를 내거나 일부 부정적 내용을 언급하면 기업과 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쳐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라며 “이번처럼 큰 사안은 공식적인 입장 표명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속내


삼성물산 담당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익명을 보장하고 개인적인 견해를 물어봤다. 역시 사인이 큰 만큼 공식적인 의견과 개인 의견은 온도차가 느껴졌다. 먼저, 합병비율에 대한 의견부터 물었다.


애널리스트들의 공식적인 의견은 “규정에 따라 진행한 것으로 문제없다”로 모아진다. 다만 한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기업가치만 놓고 본다면 삼성물산이 0.67배로 저평가된 상태, 제일모직은 4.5배 고평가 된 상태에서 합병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합병 전 보고서에서는 “삼성물산의 주가는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되었다”며 일관되게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보유 자산가치로 삼성물산을 평가하지만 주가라는 것이 늘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며 “주식시장이 효율적인가, 그렇지 않는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합병시점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한 애널리스트는 “시기적으로 삼성물산에 불리한 시점에 합병이 이뤄지긴 하지만 주가를 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의심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 의도에 이의를 제기한 애널리스트도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엘리엇 역시 저가로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입하고는 시가 방식의 합병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합병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삼성물산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이 높지만 ‘표 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 나왔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합병 절차에 문제는 없다’는 것으로 귀결해 보고서가 나가고 있다”며 “법적인 절차에 문제가 없고, 합병 후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것이 분명한데, 굳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낼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이 중요한데, 현재로는 삼성물산 측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라며 “주주의 입장에서도 삼성물산은 건설주로서 디스카운트 요인이 충분히 있고, 향후 주가 측면에서 보면 합병을 반대할 이유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외국인투자자의 표를 예측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한 애널리스트는 “아직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 보유비율이 20% 미만”이라면서 “ 주주총회에서 출석주주의 50% 이상의 찬성표를 얻으려면 확실한 찬성표를 안정적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 등의 의사가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국내 정서상 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겠지만 반삼성그룹의 정서를 가진 소액주주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는 없다”며 “엘리엇이 삼성물산 측에 현물 및 현금배당 지급 내용을 정관에 넣어 제시했는데 이는 소액주주의 표를 얻기에 유리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도의적 책임을 묻는 소액주주들도 있어, 구체적인 주주이익 환원 의견까지 제안한다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는 주주의 수는 늘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만큼 이번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표대결의 승패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엘리엇이 질 경우에는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번 합병을 둘러싼 분쟁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는 전망도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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