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처캐피털 업계 숨은 진실 '경기불황의 역설'
불황기 조성한 펀드 호황기보다 IRR 높아…낮아진 기업 벨류가 기회로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9일 08시 5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벤처캐피털(VC) 업계는 지난해 겨울잠에 든 개구리처럼 잔뜩 웅크린 한 해를 보냈다. 자금조달이 쉽잖아 펀드 결성은 어려웠다.  그만큼 신규 투자도 주춤했다. 실제 지난해 신규 조성된 펀드의 총 결성액은 6조5330억원으로 전년 대비(11조836억원) 4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VC들이 벤처기업에 신규 투자한 금액도 6조7430억원에서 5조3977억원으로 20.2% 줄어들었다.


VC들이 웅크린 이유는 명확하다. 경기불황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연일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에 발을 들였다가 '물릴' 가능성이 크다는 계산이 발동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잠재력 있는 벤처기업을 육성이라는 대의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태생은 이득을 취하는 '금융자본'이다. 투자금회수(엑시트)가 불안한 상황에서 투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지금처럼 VC들이 잔뜩 웅크려 있을 때 조성한 펀드 수익률이 평년이나 호황기에 조성한 것보다 높다는 점이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결성한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02년과 2008년이었다. 각각 내부수익률(IRR)이 8.5%, 8.6%를 기록했다. 두 해 모두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시기다. 2002년에는 닷컴버블 붕괴가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 불황이 찾아오면서 당시에도 지금처럼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 덕분에 호황기에 치솟았던 유망 스타트업들의 몸값(벨류에이션)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VC 입장에서는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스타트업을 낮은 가격에 주워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던 셈이다. 반대로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에 조성한 펀드의 IRR은 마이너스(-)2.1%였다. 2001년 역시 IRR이 1.5%에 그쳤다.


벤처투자 업계에서 불황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VC는 적절한 가격으로 좋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시기다. 기업 입장에서도 버블이 꺼지고 적절한 벨류를 인정받을 때 안정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물론 벤처 시장은 VC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출자자(LP)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돼야 한다. 벤처업계 경기 불황의 역설이 얼어붙은 운용사(GP)와 출자자의 마음을 녹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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