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버지의 위기는 아들의 기회
정도원 삼표 회장, 중대재해법 혐의 불구속 기소…3세 승계 탄력
이 기사는 2023년 04월 27일 08시 2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출처=삼표그룹 홈페이지)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삼표그룹이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도원 회장의 실형 가능성이 고조된 까닭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삼표그룹의 왕좌 교체 타이밍이 도래한 듯 보인다. 정 회장이 촉발시킨 오너 리스크가 공교롭게도 아들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물 흐르듯 진행시킬 명분이 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1월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근로자 3명이 매몰된 토사에 깔려 사망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이틀 만의 사고였다. 재계 관심사는 정 회장에게 안전의무 미준수 혐의가 적용될지 여부였다. 의정부지검은 사건이 발생한지 약 1년 2개월 만인 지난달 31일 정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그를 경영 책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선 정 회장의 실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정 회장이 채석 작업과 관련해 대표이사 등 임직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채석산업에 종사한 정 회장이 지속된 작업으로 사면 기울기가 가팔라지면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삼표그룹 적통 후계자인 정 사장 입장에서 바라본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정 사장 앞에 대권으로 직행하는 지름길이 펼쳐진 것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만약 정 회장이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그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정 사장이 부친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질 것이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정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중대재해법 발생 1호 기업'이라는 오명을 씌운 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 사장이 실질적 리더 역할을 맡는 것만으로도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시장에선 아직까지 정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 회장은 2018년 정 사장을 삼표시멘트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그가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당시 정 사장은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해 수익성을 높여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지만, 고작 1년 만에 자진 사임했다. 그가 취임한 직후부터 삼표시멘트 실적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 사장 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정 회장 외아들인 데다 3세들 중 유일하게 경영 수업을 받고 있어서다. 정 사장이 자연인 신분으로 살아갈 가능성 역시 전무하다. 그는 현재 7개 계열사의 사내이사를 '과다 겸직' 중인데, 승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다만 정 회장이 검찰 칼날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오너 리스크가 발생한 기업의 경우 공익재단을 활용, 사회에 공헌한 점을 들어 재판부에 정상참작을 바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제 정 회장이 이사장인 정인욱학술장학재단은 지난해 총 3억6700만원의 공익사업비를 집행했는데, 전년 2억2688만원보다 62% 증액된 규모다.


물론 정인욱학술재단의 공익사업비 증가가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확언할 순 없다. 하지만 재단이 지난해 그룹사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이 재단은 매년 10억원의 출연금을 그룹 계열사에서 끌어왔지만, 지난해엔 한국투자증권에서 받은 240만원이 전부였다.


그룹 돈으로 운영되는 재단을 앞세워 '정도원 구출 작전'을 펼쳤다는 눈초리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 회장이 그동안 재단의 사유화 논란에 시달려왔던 만큼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인다.


유일한 상장 계열사인 삼표시멘트는 사외이사로 고흥 법무법인 케이디에이치(KDH) 대표변호사를 선임했다. 고 변호사는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발족한 '중대재해법 태스크포스(TF)' 위원이다. 해당 TF는 현행 중대재해법의 한계를 진단하는 한편 처벌요건 명확화 등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꾸려졌다. 고 변호사를 통해 사법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단 의도가 엿보이지만, 총수가 법원으로 불려나가는 판국에 실효성을 언급하기엔 다소 민망하다.


아버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아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가 왔다. 삼표그룹 대권이 어떻게 흘러갈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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