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FP 대세에 표류 중인 K-배터리
배터리 재활용, 양극재 등 전후방 업계 근심도 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7일 15시 4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터배터리 2024'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전시한 에너지 저장 장치용 리튬 인산철 배터리 (제공=딜사이트)


[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연애할 땐 높은 눈을 고수하던 딸이 막상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사윗감은 어쩐지 부실하다. 마뜩잖은 눈치를 읽었는지 딸이 이런 말도 덧붙인다. "요즘 이런 스타일이 대세야". 딸이 있지도 않은데 심란해진다. '인터배터리 2024'를 취재한 심정이 딱 그랬다.


지난 6일 찾은 인터배터리 2024 현장은 한마디로 모순이 혼재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데, 배터리 전시회는 올해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행사 주최 측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술적 난도가 낮다는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전고체 전지를 동시에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간 업계가 주구장창 외쳐 온 '하이니켈(High-nickel)' 기조는 뒷전으로 밀린 분위기다. 'K-배터리'는 표류 중인가. 


무엇보다 LFP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배터리 시장의 주인공은 하이니켈이었다. 중국이 거대한 내수 시장을 업고 LFP 배터리를 쏟아내도 한국 배터리사들은 눈 하나 깜짝 않던 시절이다. 중국산 LFP 배터리가 저렴하고 안정적이기는 해도 전기차 주행 거리나 품질 면에서 하이니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하이니켈 배터리 탑재 차량의 화재 이슈가 도마에 오르고 세계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완성차 업계가 원가 절감을 위해 잇따라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에너지 저장 장치(ESS) 시장도 화재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LFP 배터리를 도입하는 추세다.


이에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모두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섰고 이번 전시회에서 실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밝지만은 않다. LFP 배터리의 역풍이 K-배터리 뿐 아니라 전후방 밸류 체인으로도 불고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처리다.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서 만난 한 배터리 재활용 업계 종사자는 "우리 입장에서 LFP는 골칫덩이"라며 "매립도 안되고 소각도 안되고 국내에서는 재활용이 거의 불가하다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따라서 LFP 배터리에 대한 정부 보조금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도 전했다.


재활용하더라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LFP 재활용 과정에서 추출할 만한 원료는 사실상 리튬 뿐인데, 그 비용이 막대하기까지 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업체도 지원금을 받는 실정이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쪽에서도 LFP는 '울며 겨자 먹기'다. 고객이 원하면 생산하기는 하겠지만, 원료 자체가 저렴한 만큼 마진을 붙일 여지가 얼마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김준형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총괄도 얼마 전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공장 착공 행사에서 "LFP의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자존심을 접고 LFP 배터리 시장에 발을 들인 국내 배터리 3사에 대해서도 아직까진 우려 섞인 시각이 많다. 선발 주자인 중국 대비 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점유율이 90% 정도인 시장에서 나머지 10%를 두고 땅따먹기 하는 게 당장의 현실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트렌드는 LFP지만 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전기차 등 신산업 시장마저 판세가 중저가 제품으로 기울었다. 하이엔드(High-end) 전략에 집중해 온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프리미엄 전지박 시장의 선두로 꼽히는 SK넥실리스 경우 올해 인터배터리에는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행사장을 나설 때까지 "하이엔드는 엔지니어의 자부심일 뿐, 패러다임이 바뀌었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던 한 증권사 연구원의 냉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쨌든 국내 배터리 업계는 안팎으로 쉽지 않은 환경에서 분투 중이다. 실리콘 음극재 같은 차세대 소재부터 초급속 충전, 재사용·재활용 등 다양한 파생 시장을 선점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K-배터리가 허를 찌르는 일격을 가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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