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업도 상대와 눈치 봐가며 해야
회사 주인도 등한시하는 기업에 '몽니'라니
이 기사는 2023년 02월 03일 08시 3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픽사베이)


[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스포츠든, 선거판이든, 노사협상(이라 쓰고 갈등 내지 싸움으로 읽을 수도 있다)이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여러 측면에서 상대방에 우위를 점하는 게 필수다. ▲전력이나 전략이 좋거나 ▲청중들의 지지를 받거나 ▲상대의 허점을 잘 파고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택배노조가 상대로 CJ대한통운을 꼽은 건 최악의 한 수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전략의 부재다. 택배노조는 올해부터 택배 박스당 가격이 122원 올랐는데 배송기사에게 돌아온 몫은 4~5원에 불과하단 논리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이 주장이 먹히려면 사측이 택배비 인상을 통해 얼마나 이익을 얻고, 반면 노동자들의 이익은 어느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CJ대한통운은 이를 두고 설비증설(CAPEX), 유가·환율·인건비 상승 등의 영향이 있단 점을 들었고 택배노조는 인상된 단가 122원을 노동자들과 나눠야 한단 말을 되풀이 중이다.


청중(국민)의 반응도 영 썰렁하다. 이제 택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됐는데 소비자들을 볼모로 잡는 '파업'을 선택했기 때문. 게다가 택배노조의 파업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에 있어 철옹성과 같은 난적이란 점도 문제다. CJ대한통운은 긴 시간 특유의 성질(性質), 현실적인 사정(事情) 등을 활용, 택배노조의 요구를 묵살할 명분을 가득 만들어 놨다.


우선 CJ대한통운은 돈을 못 버는 건 아니지만 택배기사 처우를 단 번에 개선할 정도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작년 3분기 누적 실적기준 이 회사의 순익은 1588억원을 기록했는데 매출대비 이익률을 보면 1.7% 수준이다. 높은 점유율을 통해 박리다매 전략을 쓴 결과로, 택배관련 비용정책 몇 개 잘못 세웠다간 수익성이 고꾸라질 수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 곳은 애초에 짠물경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CJ대한통운이 CJ그룹에 편입된 2011년부터 작년 3분기까지 벌어들인 순이익(8954억원) 가운데 주주들에게 향한 돈(배당)은 0원이다. 주인도 안(못) 챙기는 회사에 몽니 부려봐야 뭐가 나오겠나.


현 상황만 보면 택배노조가 기대해야 할 건 전력과 스토리를 갖춰 다음 시즌을 잘 치르거나 2심이 예고된 CJ대한통운과의 직접교섭 소송에서도 이기는 것 정도가 꼽히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쉽게 예상하진 못하겠다. 다만 택배노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면 최소한 협상을 이끌어 갈 명분과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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