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거친 연준과 불안한 한은, 그걸 지켜보는 채권시장
올해 채권시장 변곡점은 모두 미국발(發)…시장 영향력 뺏긴 한국은행
이 기사는 2023년 12월 04일 10시 2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3년 만기 기준 국고채와 회사채(AA-) 금리 추이.(자료=금융투자협회)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지난해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고 갔던 금리 인상 국면이 사실상 종료됐다. 올해 1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5%로 올린 뒤 동결에 나섰던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동결 기조를 이어가면서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시장의 관심사는 이제 추가 인상 여부가 아닌 내년 '인하 시점'으로 돌아선 상태다.


사실 이번뿐만 아니라 올해 채권시장에는 한은의 '말발'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초 이후 줄곧 한은의 금리 조정이 없었던 사이 미국에서는 꾸준한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의 변동이 이어졌다. 올해 채권시장에서는 크게 4~5번 정도의 변곡점이 있었는데 모두 진원지는 미국이었다.


연내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올해 초부터 금리가 낮아지던 시장에서는 한은의 1월 금리 인상에도 오히려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희망 회로에 빠진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2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였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채권 금리를 높이던 시장은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안전자산 강세 국면이 펼쳐지자 다시 공격적으로 채권을 매수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시장의 기대가 과하다"고 말한 것도 이 시점이다.


이후 경기 연착륙 전망 등으로 점진적 상승을 나타내던 채권 금리는 하반기 들어 급등세를 나타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웃돌면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은 영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도 미국 국채에 연동해 4%를 넘어섰고, 국내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SK텔레콤도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일부 만기물에서 개별민평금리보다 높은 '오버 금리'를 피하지 못했다. 치솟던 시장금리를 되돌린 것도 지난달 초 연준의 금리 동결이었다.


우리나라 채권시장 내 외국인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민감도가 커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다만 올해처럼 한은이 금리 조정 없이 '매파적' 메시지만으로는 채권시장의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그만큼 한은의 패가 다 읽히고 있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금통위원 절반 이상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시장에서 반응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현재 국고채 금리는 만기별로 3.5~3.6%대에 형성돼 연초처럼 다시 기준금리 수준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이 금리를 묶어 둬야 하는 상황에서 시장금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 긴축 효과를 떨어뜨리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의 기대 심리가 긴축보다 완화로 기울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6%로, 내년 전망치를 2.4%에서 2.6%로 높였다.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고물가 추세 등으로 한은의 물가 목표치인 2%로 끌어내리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전망이다. 또다시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부풀어 시장금리가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한은의 물가 목표치 달성을 늦추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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