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조각투자, 흥행 관건은 '거래시장' 형성
세 차례 공모서 연이어 실권주 발생...거래소 없어 환금성·유동성 낮아 '투심 냉랭'
이 기사는 2024년 01월 31일 13시 5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술품 조각투자 기초자산인 앤디 워홀의 '달러 사인'과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2002)'. 출처=서울옥션블루, 투게더아트


[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투자자들이 미술품 조각투자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매업체들이 세 차례 진행한 공모에서 모두 실권주가 발생했다. 조각투자 지분을 유통할 수 있는 거래소가 없어, 투자자들이 유동성과 환금성을 우려해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중소형 미술품을 유통하기 적합한 토큰시장(ST)이 개화돼야, 시장이 만개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 서울옥션 관계회사인 '서울옥션블루'가 최근 공모한 약 7억원 규모 투자계약증권에서 13% 가량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이 증권은 미국 팝아트 제왕으로 불리는 '앤디 워홀'이 1981년 제작한 미술품 '달러 사인(Dollar Sign)'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투자자들은 이에 대한 소유권을 공유하고 수익을 나누게 된다.


또 다른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인 '열매컴퍼니'가 공모한 12억원 규모 투자계약증권에서도 약 18%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이 증권 기초자산은 일본 유명 화가 쿠사마 야요이 작품 '호박(2001)'이다. '투게더아트'도 쿠사마 야요이의 다른 시리즈인 '호박(2002)'을 바탕으로 12억원을 공모했지만 완판하지 못했다. 실권률은 4.2%로 타 업체보다 낮았다.


복수 전문가들은 미술품 조각투자 지분을 매도할 수 있는 거래소가 없어 투심이 냉랭했다고 분석한다. 조각투자 지분은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되는 데, 자본시장법상 유통이 허가되지 않는다. 비정형적인 형태라 한국거래소는 관련 시장을 개설하지 못하고 미술품 보유 업체는 발행·유통을 겸업할 수 없다. 또 증권성을 지니고 있어 가상자산 거래소 유통도 불가능하다.


결국 투자자들은 엑시트를 하려면 매수자를 직접 물색해 지명채권처럼 양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계약증권 발행사에 별도로 양수도 승낙을 받는 등 번거로운 절차도 거쳐야 한다. 사실상 상품 만기(5~10년)까지 기다리거나, 또는 중도에 가격이 올라 발행사 주도로 미술품을 통매각해 차익을 나눠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더 수월한 상황이다.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투자계약증권 유통을 허가하는 특례를 시행하면서다. 이미 한국거래소는 투자계약증권을 전자증권 형태로 유가증권시장 내에서 거래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 상반기부터 장내거래가 가능해진다. 다만 이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여러 관문을 넘어야 한다.


현재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들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 공증으로 소유권을 입증한다. 미술품을 등기·등록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곧 투자자 명단에 변동이 생기면 공증을 다시 해야 한다. 장내거래가 가능하려면, 발행사가 공증 없이 미술품 공동 소유를 증명하거나, 또는 거래소가 매일 수백차례 발생하는 거래에 대한 공증을 시스템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 소액 작품은 사실상 장내 거래소에 상장되기도 어렵다.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가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려면, 각 작품마다 신고서를 작성·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일반기업 주식 상장 절차에 버금가, 회사 입장에서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소액 미술품을 장내에 유통할 실익이 적다. 한국거래소도 유통 질서 등을 고려해 상장 기준을 30억원 이상으로 잠정적으로 정했다.


전문가들은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려면 'ST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ST는 투자계약증권에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 기술이 결합된 형태다. 미술품 소유자가 일정한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증권을 직접 발행·등록해 별도 장외거래소에 상장시킬 수 있다. 이는 가상자산처럼 거래된다. 중소 규모 미술품 조각투자에 적합한 구조인 것이다.


ST 제도가 정착하려면 일단 법령부터 제정돼야 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계류중이다. 자본시장법은 투자계약증권 유통을 허용하는 내용을, 전자증권법은 ST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 등을 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법안이 통과돼도 시행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문화콘텐츠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술품 조각투자 최대 단점은 지분을 유통할 수 있는 거래소가 없다는 것"이라며 "세금을 파격적으로 감면할 수 있는 상품도 아니라 투자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ST 형태로 발행될 수 있는 법령이 통과돼 각종 자산들에 대한 조각투자가 가능해지면 미술품도 덩달아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각투자 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설립 중인 장내시장에는 30억원이 넘는 규모의 상품만 상장하게 될 것"며 "공증을 반복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 거래소도 유통성이 제약되는 지금같은 형태의 상품을 적극 취급하기는 어려울 것"고 말했다. 이어 "ST 제도가 정착돼야 장외시장이 형성되고 비로소 미술품 조각투자도 활성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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