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시 '중꺾마'로
성장금융 혁신펀드 소형분야 24곳 지원…대형사와 맞붙은 중소형 운용사
이 기사는 2023년 06월 29일 10시 0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권경원 선수(좌)와 조규성 선수가 지난해 12월 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승리한 후 태극기를 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출처=대한축구협회)


[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중꺾마'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축약어다. 지난해 말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전통 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2대 1의 역전승을 거두고 이 문장이 적힌 태극기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발표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금융)과 산업은행이 주관한 '2023년 1차 혁신성장펀드' 위탁운용사(GP) 선정 결과가 나온 이후 여러 운용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중꺾마'의 울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혁신성장펀드 출자공고가 나왔을 때부터 많은 벤처캐피탈리스트는 1200억원 규모의 소형 분야가 '각축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 출자자는 시장 불확실성을 우려해 곳간을 걸어 잠궜고, 출자대상 투자기구는 사모펀드(PEF), 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 등으로 폭넓게 허용됐기 때문이다. 분야별 지원 자격 제한도 없어 중형급 이상 운용사라면 일단 탐내볼만한 상황이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5개 펀드를 조성하는 데 총 24개 기관이 신청서를 냈다. 특히 굵직한 운용사들이 앞다투어 하향 지원했다. 자산총액 10조원이 넘는 신영증권은 나우IB캐피탈과 합을 맞춰 공동운용사(Co-GP), 자산 7조원이 넘는 이베스트투자증권도 단독으로 신청했다. PEF 운용사인 LX인베스트먼트는 중소기업은행과 Co-GP를 구성했다.


창업투자회사로만 한정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운용자산(AUM) 1위로 2조7000억원을 넘게 굴리고 있는 한국투자파트너스는 IBK캐피탈과 Co-GP를 짰다. 역시 AUM 1~2조원을 굴리는 소프트뱅크벤처스, 스톤브릿지벤처스, 프리미어파트너스 등도 지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UM 3000억원대 이하의 하우스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트랙 레코드가 부족해 경쟁도 어려운 듯 했다. 이 가운데 메디치인베스트먼트와 케이투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등은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케이투인베스트먼트가 운용 자격을 따냈고 그 외에는 이변이 없었다. 나머지 4곳 운용사로는 ▲한국투자파트너스-IBK캐피탈 ▲스톤브릿지벤처스 ▲LX인베스트먼트-중소기업은행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됐다. 될 곳이 됐다는 반응이었다.


지난주 메디치인베스트먼트 관계자와 식사 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는 미팅 도중 전화가 왔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곧 돌아와서 말했다. "이번 출자사업, 저희는 잘 안 됐나봐요"라며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어느 정도는 예견했지만, 그래도 이게 벤처투자 인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의미를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실은 경쟁이 치열할 것이 불 보듯 뻔했죠. 골리앗 앞에 선 다윗 같았다고 할까요. 마지막까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일단 부딪히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벤처기업은 매일 이런 상황을 겪고 있잖아요. 도전을 권유하면서 정작 우리는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어불성설이 어딨겠어요"


벤처투자 시장이 긴 한파를 겪고 있는 동안 중소형 운용사들은 지금같은 경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GP 선정 결과를 보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모두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누구를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상황을 받아들이며 계속 도전하겠다는 메디치인베스트먼트 관계자의 말은 울림이 컸다.


포르투갈전에서 우리나라가 역전골을 넣은 시간은 후반 45분이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한 시간을 견뎌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대표팀처럼 중소형 운용사들도 계속 도전한다면 곧 역전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 출자사업에 도전한 중소형 하우스들은 정말 잘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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