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형 증권사발 '찍기성 CB' 뒷처리 난항
겉으론 정상거래···결국 피해는 소액주주로
이 기사는 2023년 02월 14일 16시 4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박기영 기자] 코스닥 상장사들이 M증권사발 '찍기성' 전환사채(CB) 뒷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찍기성 CB란 재작년부터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유행한 수법이다. 상장사가 CB를 발행해 납입된 자금으로 안전성 높은 국공채를 매입해 해당 CB에 다시 담보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외견상으로는 재무 상태가 불량한 상장사가 대형 증권사로부터 수백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해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CB 발행 대금은 모두 담보로 제공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금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 CB는 사실상 '찍기'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찍기성 CB'라고 불린다. 찍기란 가장납입을 뜻하는 은어로 회사에 돈을 넣은 것처럼 했다가 곧바로 다시 빼가는 수법이다.


이런 CB 발행이 가능한 이유는 안정적 수익을 얻고 싶은 증권사와 외형을 포장하고 싶은 한계기업 경영진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한계기업에 납입한 자금은 해당사 신규사업이 아니라 국공채 매입에 쓰인다. 담보로 질권이 설정됐기 때문에 사고 위험은 거의 없다. 이렇게 리스크를 크게 줄이면서도 통상 3% 수준의 CB 발행수수료를 챙기고, 국공채 수수료도 추가로 받는다. CB에 설정된 이자는 덤이다. 이는 일반 국공채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수배에 달하는 수익이다. 반면 한계기업 경영진은 수백억원 수준의 투자를 유치한 것처럼 외형을 꾸밀 수 있다. 이후 주가가 오르면 CB에 설정된 매도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해 특정인에게 차익을 얻도록 할 수도 있다.


발행 초기에는 정상적인 거래로 보인다. CB 발행 목적을 M&A로 설정하면서 투자자 측이 정당한 자금 집행을 확인하기 위해 질권을 설정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천천히 뜯어보면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먼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것 같은 외형을 만들기 때문에, 주가와 연계해 특정인이 차익을 챙겼다면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회사는 쓰지도 못하는 자금을 들고 있는 댓가로 CB 발행 수수료와 국공채 발행 수수료 등을 지불해 배임 소지도 있다. 특히 CB 발행을 중계한 제3자에게 금전을 지불했다면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다. 자문이나 컨설팅 같은 용역 등의 형태로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본질은 자금 중개이기 때문에 위법 소지가 크다.


실제 해당 CB에 대한 설명을 들은 복수의 시장 관계자는 단박에 '찍기'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 몫으로 돌아간다. 소액주주 관점에서 보면 내가 투자한 회사가 M&A를 목적으로 수백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신사업 진출은 깜깜무소식이다. 혹시라도 다른 이유로 주가가 올라도 CB 전환 물량이 쏟아지며 수익을 모두 가로채 간다. 


이 수법은 시장에서 알음알음 알려지다가 지난해 말 한 언론이 보도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M증권사를 대상으로 찍기성 CB를 발행한 상장사들은 일제히 만기 전 매입에 나섰다. 논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발 빠른 행동으로 보인다. 매입 재원은 담보로 잡아놓은 국공채다. 졸지에 CB를 다시 떠안게 된 한계기업들은 CB 재매각에 골머리를 썩었다. 눈에 띄는 사례는 N사의 경우다. M증권사는 이 회사가 발행한 '찍기성 CB' 중 일부를 전환했다. 이 회사는 남은 물량을 매입해 다른 회사의 '찍기성 CB'와 맞교환하고, 남은 CB 180억원어치로 자본금 13억원 짜리 회사 경영권을 매입했다. 다만 재무 상태가 불량하고 처음 CB 발행 의도 역시 불순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 


논란이 더이상 확산되지 않은 이유는 금리인상에 따른 조달시장 위축 때문이다. 찍기성 CB와 별개인 다수의 상장사가 CB 만기전 취득에 나서며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일견 정상거래로 보인다는 점도 논란 확산에 보탬이 됐다. 논란은 수그러 들었지만 위법 소지로 가득한 해당 CB가 여러 상장사에 뿌려졌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리스크는 소액주주에게 떠넘기고 '그들'만 이득을 보는 이런 수법이 더 이상 새롭게 등장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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