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르디우스의 매듭, 자르지 말고 풀어야
문체부·영진위, 韓 영화 홀드백 의무화 추진...극장·OTT 간 소통부터 주도해야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1일 08시 4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크레아(KREA.AI) 생성)


[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엄밀히 말하면 '극장 산업'과 '영화 산업'을 구분해야 합니다. '극장 산업'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국내 극장 관객이 반토막 났기 때문이죠. 반면 '영화 산업'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만큼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과거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주장은 일견 맞는 듯 하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작성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영상산업 매출은 69억3000만달러(한화 약 9조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대비 38%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극장 티켓 및 광고 수입·OTT 비디오·FAST(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등의 매출이 포함돼 있다. 범위가 넓지만, 경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


'K-콘텐츠'의 위상도 여전히 높다. 지난해 한국영화 완성작 수출금액은 6216만달러(한화 약 830억원)를 기록했다. 역대 3위 기록으로 2019년보다 64% 높다. 완성작 수출금액에는 글로벌 OTT로 판매된 매출 일부가 포함됐다. 특히 신규 계약 건수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수출 편수는 1349편으로 동 기간 대비 135% 증가했다.


반면 국내 극장 수입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극장 매출은 2019년 대비 38% 감소한 5984억원에 불과했다. 외화까지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단지 극장을 찾지 않을 뿐, 영화는 예전보다 더 많이 보고 있다. 다만 한국영화 매출 70~80%는 여전히 극장에서 발생하다 보니,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앞선 통계가 방증하듯, 영화 산업의 헤게모니는 극장에서 OTT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영진위가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영화관람 편수는 2022년 기준 연 21.6편으로 지난 2018년(15.7편) 대비 6편이나 증가했다. 그러나 동 기간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는 1.6편 줄었고 극장 바깥에서 OTT 등으로 관람한 작품은 7.4편 늘었다.


그렇다고 해서 OTT가 당장 극장 역할을 대체할 수도 없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4년 동안 25억달러(한화 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기에는 드라마 등이 포함됐다. 다른 OTT는 넷플릭스 만한 자본력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콘텐츠 매입비용이 늘어나 만성적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성장 속도도 과거보다 느려졌다.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다 보니, 영화계 종사자들의 셈법도 각기 달라지고 있다. 극장을 운영하지 않는 일부 투자·배급사는 생존하기 위해 사업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일단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으면 차라리 OTT에 빠르게 판매해 손실을 최대한 보전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은 흥행 실패로 개봉 44일만에 OTT에 무료로 풀렸다.


그간 영화계가 자율적으로 지켜오던 3~6개월 내외의 '홀드백'(유예기간)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한국 영화에 홀드백을 의무로 적용하는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극장 개봉 후 OTT에 무료로 공개되기까지 걸리는 기간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 사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멀티플렉스와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홀드백을 전면 찬성하고 있다. 일단 극장부터 살려야 밸류체인이 유지되고 곧 재투자에도 물꼬가 트인다는 의견이다. 반면 OTT와 일부 창작자 등은 반대하고 있다. 유통 경로가 줄어 회수에 제약이 걸리고 곧 후속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므로 '단통법'처럼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영진위는 지난해 9월 '한국 영화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를 출범했다. 여기에는 문체부·벤처캐피탈을 비롯해 영화계 주요 관계자들이 참여했지만, OTT 인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진위 주요 수입원이 극장 티켓 가격에서 3%를 공제하는 '영화발전기금'이라 일견 납득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OTT는 이제 한국영화의 한 축이 됐다. 이럴 때 일수록 오히려 소통 창구를 열어야 한다. 영진위가 주도하기 어렵다면 그 상위 기관인 문체부라도 나서야 한다. 별도의 협의도 좋지만 관계자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모두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극장' 아닌 '영화'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소통은 선행돼야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르기 전에, 일단 침착하게 풀어보려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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