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부덕의 소치"
금감원 '전관예우'로 인한 내부통제 실패…이복현 원장도 책임?
이 기사는 2024년 04월 19일 08시 2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제공=금감원)


[딜사이트 이성희 차장] "다 짐이 부덕한 탓이요"


옛 왕들은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거나 역병이 돌거나 나라에 변이 생기면 그 모든 것을 자신이 덕이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라며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 경우 임금은 끼니의 반찬 가짓수도 줄이고 음주가무도 삼가는 등 몸과 마음가짐을 정갈히 하면서 백성의 곤란을 보살폈다.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 노력에 따라 무리에 속한 이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속한 나라와 기업, 조직 등에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과 최고경영자 등 리더에게 책임을 묻는다. 리더가 조직의 구석구석까지 세밀히 직접 챙기지는 못하지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갖춰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에게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 시 CEO도 내부통제의 총괄 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CEO의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면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 및 사고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3년새 굵직한 금융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데, 2022년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건 이후 지난해 BNK경남은행 직원의 1000억원대 횡령, KB국민은행 직원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127억원대 주식 매매차익, DGB대구은행 직원의 불법 증권 계좌 개설, 롯데카드 100억원대 배임 등이 대표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반복적인 금융사고 발생에 대한 금감원의 대응 미흡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금융회사를 너무 신뢰했던 측면이 있어 앞으로 날카로운 시각으로 감독과 검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금융회사 CEO나 최고위층의 판단 문제가 있어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행태에 대해서는 CEO든 CFO든 책임을 지우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에게 대표이사는 물론 각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무구조도 도입을 예고했고, 올해 7월3일부터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개정 시행된다.


기존에는 내부통제 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와 별개로 사건이 터져도 책임소재가 명확치 않아 최고경영진과 임원, 이사회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CEO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전 금감원에도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금감원 현직 간부가 민간 금융회사에 이직한 전직 금감원 직원에게 검사 및 감독 정보를 유출한 혐의가 드러나면서다. 이로 인해 금감원의 전관예우 관행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됐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에서 금감원 전직 직원이 금품을 받고 금감원에 검사 관련 청탁을 한 사실이 적발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었다. 이를 계기로 4급 이상 금감원 직원은 퇴직 후 3년간 금융회사에 재취업할 수 없게끔 '전관예우금지법'이 확대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전관예우의 '효력'을 알고 있고 이로 인한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금감원 퇴직자의 금융권 재직 현황'에 따르면 상반기말 기준 5대 은행 상임감사위원 5명이 모두 금감원의 은행 담당 임원 출신으로 확인됐다. 또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금융사 127곳에 총 93명의 금감원 퇴직자가 근무 중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금감원 퇴직 당시 부원장보나 국장 등 고위직이었다. 퇴직 후 3년간 금융사 재취업 금지법은 우선 다른 직장에 재취업하고 3년 뒤 금융사로 옮기는 방식으로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도 금감원 현직 국장이 금융사로 이직한 전직 금감원 직원에게 정보를 흘린 혐의로, 금감원 내 전관예우 관습이 기업의 제재 회피를 위해 여전히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금융사의 내부통제 미흡을 지적하고 CEO에 대한 법적 책임 여부도 강화하고 있는 금감원에서 이러한 내부통제 이슈가 발생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복현 원장이 그간 모든 임직원들에게 금융사나 로펌으로 이직한 임직원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일을 자제하라고 당부한 것도 공염불이 됐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장의 관리 감독 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의 내부통제 실패에 CEO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이복현 원장이 과연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금감원의 내부통제 실패 사례에 대해 책임을 자처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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