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래를 뱉은 닭
'해운업 침체기' 하림, 팬오션 M&A 후 경영능력 보여줄 때
이 기사는 2024년 02월 19일 08시 2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권녕찬 기자] 하림의 HMM 인수전이 실패로 끝났다. 해상과 육상을 아우르는 초대형 물류공룡을 꿈꿨던 하림의 꿈은 일장춘몽이 됐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재계순위 10위권 도약을 눈앞에 뒀던 김홍국 회장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애시당초 이 빅딜을 놓고 잡음은 계속됐다. '닭이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그 기저에는 하림의 인수자금 조달능력에 관한 의구심이 깔려 있었다. HMM의 인수 주체는 팬오션으로, 6조4000억원의 인수금액은 팬오션의 자본과 연간 EBITDA 규모를 고려할 때 과중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여기에 매각 측(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의 영구채 주식 전환 시 하림이 우선매수권을 확보했을 경우를 고려한 총 인수자금은 8조원에 달했다.


하림그룹은 자체 자금과 인수금융, FI(재무적 투자자) 등을 통해 8조원 규모의 자금조달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으나, 이에 관해 낙관적으로 평가한 곳은 당사자인 하림 뿐이었다. 팬오션 실적이 최고를 찍었을 때인 2022년 자기자본 규모는 4조4399억원, 당시 EBITDA는 1조4463억원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실적 호조가 하림 측의 경영능력이 탁월해서 이룬 결과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코로나19 때 역대급 해운 특수를 누려 나타난 성적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하림그룹에서 해운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7%에 달한다. 육계 가공·사료 제조 매출 등은 20%에 불과하다. 닭고기로 상징되는 하림이 실상은 해운회사인 셈이다. 


해운업은 조선업, 건설업 등과 같이 외부 시황에 민감한 업종이다. 최근 벌크 및 컨테리어 업황 하락에 따른 침체 국면에 직면했다. 실제 2023년 팬오션 실적은 전년동기 대비 크게 쪼그라들었다. 팬오션은 실적 하락 이유에 대해 벌크 및 컨테이너 시황 하락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HMM 인수 실패가 결과적으로 호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팬오션 우군이던 세계 5위 선사 하파그로이드(Hapag-Loyd)의 동맹 이탈로 인수 시너지가 떨어졌고 재무 부담도 덜게 됐기 때문이다. 또다른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인 양재 첨단물류단지 개발도 자금 부담 우려가 낮아졌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일 컨테이너 국적 해운사의 경영권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견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숙제로 남았다. HMM의 이러한 특수성과 공공성을 위해 정부가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와 민간기업의 독립경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절충점을 찾지 못하면서 딜이 깨졌다. 양측의 이러한 논리 충돌은 영구채 주식 전환 이슈를 통해 발현됐다.


향후 1년간 영구채 전환 시점이 도래하면서 매각 측의 HMM 지분율은 71.7%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매각 측이 배임 이슈를 우려해 해당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해당 지분가치는 10조원을 넘길 거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하림이 아니라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안정적으로 해운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스코, 현대차, 한화 등이 벌써부터 물망에 오르고 있다.


빅딜에 실패한 하림은 해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하림지주의 차입금의존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48.4%에 달한다. 향후 해운업의 업황에 따라 차입금 상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큰 구조다. 과중한 차입금에 따른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연간 EBITDA가 해운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 업황이 침체 국면을 맞는 가운데 하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김홍국 회장이 신의 한 수라고 평가했던 해운업 진출이 되레 그룹을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팬오션 인수가 신의 한 수라고 했던 그의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북 익산 소재 하림지주 본사. 제공=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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