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석유화학 매각 릴레이'···씁쓸함 넘어 우려도
중동은 공격적 투자中…인도·동남아 '급성장' 신시장 뺏길라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2일 14시 4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공장 (제공=롯데케미칼)


[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황금기를 누리던 산업이 이제는 탈출해야 할 '지옥도'로 취급 받고 있다. 석유화학에 대한 얘기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을 필두로 나프타 분해 시설(NCC) 등 핵심 자산 매각, 범용 소재 사업 처분 및 구조 조정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이에 석유화학 자체를 사양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지 오래다. 


정말 매각이 능사일까. 업계는 범용 제품의 경우 중국발 과잉 공급에 수익성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고,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소재 등 신성장 동력에 투자해야 하는 만큼 현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셸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바스프 등 메이저 화학사들도 자산 매각을 타진 중인 만큼, 범용 소재 사업 조정은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석유화학에 투자를 늘리는 나라들도 있다. 특히 인도랑 동남아로 중동 자본이 몰리는 모양새다. 주체는 최근 다운스트림에 공격 투자하며 수직 계열화의 퍼즐을 맞추고 있는 중동 정유 업체들이다. 석유화학 수요 급성장이 예상되는 인도, 동남아 등 신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회사인 아람코는 지난해 중국 석유화학사 영성석화 지분 10% 매입에 합의했으며, 푸젠성 지역의 석유화학 단지 조성에도 투자했다. 아람코는 2018년부터 10년간 관련 분야에 1000억달러(약 137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UAE 국영 정유사인 애드녹 역시 인도 국영 석유 기업 IOC와 함께 마하라슈트라주에서 하루 120만배럴의 정제 처리 능력을 보유한 정유 시설을 건설, 개발하는데 참여 중이다. 쿠웨이트는 베트남에 진출했다. 동남아권 경우 정부 인허가 등이 까다로운 만큼, 현지 업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주로 합작 투자하는 방식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자 글로벌 3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인도가 주목받고 있다. 단일 시장으로는 중국에 버금가며, 남미와 아프리카를 합한 것보다 큰 수요 시장을 갖췄다. 게다가 인도는 인건비가 낮아 원가 절감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는 시장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우리 기업들도 인도에 지사를 뒀지만, 판매 법인 개념이다. 수출을 타진하고는 있지만 현지 생산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 등을 꾀하는 '적극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동남아 역시 인도와 함께 향후 석유화학 수요가 큰 폭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이다. 이미 일본이 1990년대부터 동남아에 적극 진출해 온 만큼 중국발 공급 과잉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입으며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중동은 인도와 동남아를 넘어 한국으로도 손을 뻗치고 있다. 아람코는 자회사인 에쓰오일을 통해서는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울산에 9조3000억원을 투입해 초대형 NCC 단지를 짓는 사업이다. 쿠웨이트 석유화학사 PIC(Petochemical Industries Company)은 LG화학의 NCC 포함 기초 소재 사업 지분 매입을 추진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보 후퇴를 택했다. 롯데케미칼이 파키스탄 자회사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 일부 매각을 추진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잇따라 범용 소재가 아니라 배터리 및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로 승부하겠다며 전략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중국발 공급 과잉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제는 '기술 우위'라는 말로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이에 대해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현금흐름 개선을 위해 일부 석유화학사가 자산 매각, 조정을 진행 중이지만 범용 사업에 한정됐고, 해외 사업장을 제외하면 국내는 현재 추진 중인 LG화학 NCC 등을 제외하면 매각될 설비는 없을 것"이라며 "중국 수요를 대체할 아세안 지역 등의 매각이 아쉽기는 해도 현재의 중국발 공급 과잉은 중장기적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업계 한 관계자는 "기초 소재의 비중을 줄이는 게 정말 맞는지, 역발상으로 현재 헐값으로 쏟아지는 매물을 사들이는 게 나은 것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의 인당 국내 총 생산(GDP)이 1만달러 수준이라면 인도는 인당 2000달러 밖에 하지 않는다"며 "인당 GDP가 2000달러에서 8000달러까지 올라갈 때 플라스틱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수요 증가 폭은 특히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유화학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받쳐 온 주춧돌이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 제품 등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수출 품목으로 꼽힌다. 지난해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456억달러)은 1년 전보다 15.9% 감소했지만, 2021년에는 500억달러를 넘어서며 반도체에 이어 수출 품목 2위에 올랐던 시절도 있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은 나라지만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강국임을 생각하면 씁쓸함을 넘어 우려까지 나온다. 경쟁력이 저하한 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신시장에서의 사업 기회까지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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