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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이재용 부당합병 재판 '무죄'… '승계'에만 매몰된 검찰 논리의 한계
이 기사는 2024년 02월 06일 08시 1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김가영 기자)


[딜사이트 정호창 부국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 모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관련 사건인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이 회장이 뇌물 공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근거로 일각에선 이번 판결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2020년 9월 검찰의 공소 제기 때부터 '무리한 기소'라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 보면 검찰이 이 회장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기소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오직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목적만을 위해 이뤄졌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러한 논리는 합병에 다른 목적이나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는 '승계'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략적 경영 판단에 따른 합병의 '부수적 효과 내지 결과물'일 수 있다거나, 검찰 주장과 달리 다른 합병 목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명하면 허점이 생긴다.


재판부도 이 부분에 집중해 판결을 내렸다. 두 회사 합병이 성장 정체 및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던 중 추진됐으며, 이 회장의 승계만을 위해 이뤄졌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게 무죄 판결의 이유다.


이는 법리적으론 합당한 결과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 법 제307조 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한다.


풀어 보면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 가능성이 열에 아홉일지라도, 무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으로 대변되는 원칙이다.


이 회장이 국내 1위 재벌 총수이고, 유력인사이기에 나온 판결이 아니다. 검찰이 다른 가능성을 일체 배제한 채 혐의를 단정했고, 그에 대한 완벽한 입증을 하지 못했기에 형사소송법 대원칙에 따른 무죄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기업의 합병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수많은 주주와 이해 관계자들의 이해득실을 따져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추진돼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고차원적 활동이다. 검찰은 이를 너무 쉽게 봤다. 대주주가 명령하면 바로 실행되는 일로 보고 이 회장과 삼성 경영진을 기소하는 패착을 뒀다.


정치 성향이나 반재벌 정서에 매몰돼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일의 결과로 누가 이득을 얻었는가, 이득을 본 자가 수상하다'는 식의 논리가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에서도 통용된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사법 리스크 속에서 살게 될 지 모른다.


완벽한 유죄 입증은 검찰의 의무이자 존재이유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이에 실패했고, 법원은 원칙에 따른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감정적이고 날선 비난을 쏟아낸다. 하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안전장치임을 잊어선 안된다. 그 대상이 재벌이건 서민이건 무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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