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의 窓]
장인정신과 수익의 중간 어디쯤
자금조달부터 공사까지 '총체적 부실' 건설업, 이제는 수술대에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0일 08시 1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규창 편집국장] 추억 속의 기업이 된 STX그룹은 지난 2007년 10월 노르웨이 국적의 조선사 아커야즈(Aker Yards ASA)의 지분 39.2%를 취득했다. 노르웨이는 물론 전유럽이 한국의 '듣보잡' 기업의 유럽 최대 조선사 인수 소식에 경악했다. 아커야즈는 조선업의 종합예술이라는 크루즈선 제조사로 유명했다. 따라서 현지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았다. 국내 인수 자문사는 발바닥에 땀나게 유럽을 들락거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EU는 이듬해 5월에서야 해당 인수건을 승인했다.


그런데 진짜 난관은 인수 후에 발생했다. 작업과 휴식 시간을 정해놓는 한국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 공기(工期)를 앞당기자고 독려해도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현지 기술자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왜 공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었다. 또, 문고리 하나, 커튼 하나도 유럽산 최고급을 써야했다. 크루즈선은 높은 부가가치를 자랑하지만 한땀 한땀 정성들 들여야 하는 '제품'이다. STX유럽으로 이름을 바꾼 아커야즈는 분기 적자와 흑자를 반복했다. 노르웨이가 아닌 다른 국가 증시에 STX유럽을 상장하려던 STX그룹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더군다나 STX그룹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했고, STX유럽은 분리 매각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눈을 현재의 국내로 돌려보자. 경기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긋지긋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최근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도 시행사 대신 PF대출 보증을 남발했다. 마구잡이로 수주했다. 금융기관은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보증에 의존해 돈을 빌려준다. 영세한 시행사는 자기자본으로 사업비의 극히 일부분에만 조달하고 나머지를 빚으로 해결한다. 사업 리스크를 건설사와 시행사가 같이 떠안는 구조다.


이러한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치르고 시작된 공사는 하청, 재하청 과정을 거친다. 공사비는 깎이고 부실 공사로 이어진다. 재하청을 금지한 건설산업기본법은 온데간데없다. HDC현대산업개발과 GS건설 등 1군 건설사의 공사장도 잇단 사고로 얼룩졌으니 다른 건설사는 말해 뭣하랴.


그렇다고 무작정 건설사에게 정석대로 자금을 조달하고 옛 아커야즈 기술자들처럼 장인정신으로 건물을 지으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땅값도 비싼데 건축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결국 우리 몫이 된다. 수익을 내야 하는 건설사가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건설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책을 마련한다. 사실 대책이라기보다 땜질식 처방이다. 자금조달 단계부터 손질하지 못하고 사고 후에 매번 건설과정의 맨 뒷단에 처벌만 강화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부동산 PF 대책이 나올지 모르겠다. 자본금 3억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시행사의 설립 규정부터 손질해야 한다. 사업성 평가보다 건설사 신용으로 대출해주는 관행도 마찬가지다.


건설사에 장인정신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현재의 수익 추구에 따른 PF나 공사 부실 사이 어디쯤 접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양 극단을 언급하다보니 여의도 정치판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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