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70년 생 마감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창업주 장남 출생, 항공업 경쟁력 강화…부인·자녀 ‘갑질논란’ 속 경영권 위협 직면


[딜사이트 권준상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굴곡진 70년 생을 마감했다. 앓고 있던 폐질환이 악화하면서다.


조 회장은 부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은 뒤 대한항공을 세계적 항공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땅콩회항’을 시작으로 한 부인과 자녀의 각종 갑질논란, 본인 스스로의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그룹의 위상을 실추시키며 경영 리스크를 키웠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한진그룹 창업주 장남으로 태어난 조양호


조양호 회장은 1949년 3월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64년 서울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1968년 메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1975년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경영학사, 1988년 인하대학교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며 그룹에 첫발을 내딛었다.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실무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후 그는 경영수업을 받으며 빠르게 주요 계열사의 수장을 맡았다. 대한항공 입사 18년 만인 1992년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고, 1996년에는 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이어 1999년에는 대한항공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2002년 부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82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이듬해인 2003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하지만 조 회장은 그룹 전반을 이어받지는 못했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전 회장의 유언에 따라 대한항공(조양호 회장), 한진중공업(조남호 회장), 한진해운(고 조수호 회장), 메리츠금융(조정호 회장)으로 계열 분리됐기 때문이다. 이후 조 회장은 형제들과 유산분배로 수년간 법적분쟁을 겪으며 대립했다.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 일조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의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그룹 회장에 오른 2003년 당시 세계 항공산업이 이라크 전쟁,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미국 9.11 테러 등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상황이었지만, 조 회장은 이를 도약의 기회로 판단하고 차세대 항공기인 A380 등의 구매계약에 나섰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현재 항공기 166대를 보유, 43개국 11개 도시를 운항하는 세계적인 항공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토대로 대한항공의 매출과 자산을 1969년 출범 당시보다 각각 3500배, 4280배 성장시켰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한편 2008년 7월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LCC)인 진에어(Jin Air)를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에도 나섰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발언권도 높여왔다. 그는 ‘항공업계의 유엔(UN)’이라고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1996년부터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으면서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우리나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땅콩회항’으로 시작된 오너일가 논란…그룹 전반 위기감으로


조 회장은 사회적 비판도 수없이 받았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사건을 시작으로 조 회장 일가의 갑질논란이 줄을 이었다. ‘땅콩회항’은 2014년 12월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하기시킨 사건이다.


지난해에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과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직원 폭행 혐의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회적 뭇매를 맞았다. 조 회장 스스로도 27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론은 악화했고 이 과정 속에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하고 나서면서 경영권 위협을 해왔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가세하면서 조 회장은 그룹 경영권 위협에 직면했다.


결국 지난달 말에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정기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등기이사) 연임이 실패했다. 조 회장 일가의 갑질사태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사회적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기관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서 외국인과 기관 등이 연임에 반대한 결과다.


한진해운 사태도 늘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창업주인 조중훈 전 회장이 1977년 세운 한진해운은 그의 유언에 따라 조수호 전 회장이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가 2006년 운명을 달리하면서 그의 부인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경영에 나섰지만 줄곧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1년부터 3년간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조양호 회장이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하며 한진해운 살리기에 나섰지만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되고 말았다.


◆미국서 폐질환 악화로 별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현지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미국에서 앓고 있던 폐질환과 관련해 치료를 받고 호전됐지만 갑작스럽게 악화하면서 70년 생애를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그리고 손자 5명이 있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운구를 포함한 장례일정과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그룹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주요 현안은 당분간 그룹 사장단 회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도 돌입한 상황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