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브레인’ 모여든 사이버포트, ‘뉴 홍콩’ 만든다
1200여개 다국적 스타트업 입주…핀테크·인공지능·이스포츠 스타트업 육성

[딜사이트 류석 기자] 홍콩 공항에서부터 찻길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홍콩섬. 굽이굽이 뻗어있는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주변을 둘러싼 산자락 속에 웅장한 규모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단지가 모습을 나타낸다. 주상복합 아파트들과 세련된 형상의 상업 건물, 가파르게 깎여진 암벽산이 조화를 이루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홍콩 정부가 자본금 100%를 출자해 2005년 설립한 ICT 산업 단지 ‘사이버포트(Cyberport)’는 홍콩 신산업 육성의 보고다. 금융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홍콩의 산업 체질을 ICT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버포트 내에서 바라본 산업단지 전경.

23일 팍스넷뉴스는 홍콩 스타트업 육성의 메카인 사이버포트를 찾았다. 사이버포트의 첫인상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애플 등 다국적 대기업들 본사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어느 곳을 가도 빽빽한 빌딩 숲을 자랑하는 홍콩이지만 사이버포트는 비교적 여유로운 건물 배치가 눈에 띄었다. 또 부지 확보를 위해 산을 깎아 그 위에 대형 건물 여러 동을 지어놓은 모습은 절경에 가까웠다.


사이버포트 설립 이후 글로벌 혁신 스타트업들이 ‘동양의 진주’ 홍콩으로 모여들고 있다. 아시아권 스타트업은 물론 유럽, 북미 여러 국가 유망 기업이 홍콩을 찾아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한다. 글로벌 사업을 준비하는 창업자들에게 홍콩은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다. 인접 국가 및 도시인 싱가포르, 중국 상해 등과 비교해 유리한 세제 혜택과 중화권, 동남아 국가에 진출하기 쉬운 지리적 위치 등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홍콩 정부에서는 이러한 특장점을 살려 2000년대 초반부터 스타트업 육성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에서 대규모 자금을 들여 사이버포트를 비롯해 ‘홍콩사이언스파크(HKSP)’ 등 여러 신산업 기지를 조성했다. 또 스타트업에 대한 각종 조세 혜택을 신설하며 홍콩을 ‘창업 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도 홍콩 공무원들은 직접 전 세계를 누비며 유망 스타트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사이버포트 전경.

이날 찾은 사이버포트는 총 5개 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약 12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대규모 산업 단지다. 전체 입주 기업 중 약 400여개 스타트업이 홍콩이 아닌 유럽, 북미, 아시아 등 다른 국가에서 설립됐을 정도로 해외 기업 비중이 높다. 대부분 현지에서 창업했거나 글로벌 사업을 위해 홍콩에 별도 법인을 꾸린 경우였다. 또 사이버포트 내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다국적 대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총괄 법인을 비롯해 벤처캐피탈과 같은 투자회사, 중국 및 홍콩 증시 상장기업들도 둥지를 틀고 있다.


각각이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 혹은 투자로까지 이어지기 쉬운 구조다. 사이버포트에 입주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사, 대기업 파트너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사이버포트 여러 동을 돌아다니다 보면 직원이 1~2명인 스타트업에서부터 수백명 규모의 중국 상장사 등이 곳곳에 혼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곳곳에 위치한 잘 조성된 공용 회의실과 카페, 라운지 등에서 각각 다른 기업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또 한 강당에서는 벤처캐피탈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IR)을 진행하는 스타트업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버포트 내 입주사 업무 공간.

사이버포트는 2005년 개관 당시만 해도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경쟁력이 높은 홍콩 금융 인프라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금도 입주 기업의 약 33%에 해당하는 400여개가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설립 약 14년이 지난 현재는 핀테크뿐 아니라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이버보안, 디지털엔터테인먼트, 이스포츠(게임) 등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사이버포트 탐방 중 만난 한 관계자는 “특히 이스포츠 산업 육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 관련 분야의 강자인 한국 기업들을 많이 유치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이스포츠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는 모습.

사이버포트에서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사이버포트 창업가들(Cyberport Entrepreneurs)’을 운영 중이다.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수준에서부터 시작해 상용 서비스를 출시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한 스타트업까지 총 5단계에 걸쳐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입주 공간과 사무 지원은 물론 단계별 최소 10만 홍콩달러(한화 약 1500만원)에서 50만 홍콩달러(약 7200만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한다. 또 성장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에는 사이버포트에서 자체적으로 운용 중인 ‘매크로펀드(MACRO FUND)’를 통해 최대 2000만 홍콩달러(약 28억원) 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금은 대부분 입주한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임대료 등 사이버포트 운영을 통해 거둔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번 탐방을 동행한 빌리 엔지(Billy Ng) 사이버포트 마케팅 책임자는 유난히 말을 아끼면서도 “홍콩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국인, 외국인 상관 없이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사이버포트의 역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시간여 사이버포트를 돌아본 후 들은 그의 말을 통해 작은 도시국가였던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중심지로 부상했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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